이 시대에 필요한 개혁주의_김기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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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필요한 개혁주의

김기영 목사(서서울노회, 부총회장)

생산적인 총회가 되자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생산적인 총회, 교단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단이 추구하는 
바에 대하여는 여러 목소리를 들으면 대체로 ‘정체성’과 ‘개혁’ 그리고 ‘발
전’으로 생각됩니다. 어쩌면 이러한 방향이 상충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두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방향입니다. 이러한 방향을 어떻게 조화
롭게 이루어 갈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어느 한 요소만 고집하
면 편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만일 정체성을 고집하여 16세기의 방식으로 행동하면 편할지 모릅니다. 그러
나 청교도들이 보여준 삶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까지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렵
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만 해도 당시 오르간을 예배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이는 감정적인 요소로 사람의 마음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는 지성주의에 의한 것입니다
.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 오르간 사용을 금하
는 교회는 없습니다. 

성경이 쓰여진 초대교회나 구약시대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는커녕 알지도 못해 설명 없이는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운 배경이 많습니다. 
말씀은 삶의 배경에서 주어지고 그리고 실천되며 배경이 다른 시대에 또한 실
천되어야 할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빠르게 변한다고 합니다. 변한다는 말은 두 가지 면
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말씀조차 변하는 면이 있고, 또 하나는 삶의 방식
과 배경이 변한다는 말입니다. 세대간에 격차가 두 가지 면에서 생깁니다. 젊
은이들은 윤리의식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변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그러
나 삶의 방식에서 변화는 우리가 좁혀 가야할 과제입니다. 

좋아하는 음악스타일은 30년 간격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끼리 일치될 수가 없
음이 당연합니다.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한 지붕 아래 사는 아버
지와 아들 사이도 단절된 상태를 면할 수 없습니다. 죄악시 내지 금기해야 
할 부분이 내용만 아니라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릇까지 된다면 세대 차이를 좁
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그러나 말씀에서 일치하는 것을 목표 삼고 형식에
서 변화를 수용한다면 가능합니다. 

개혁주의의 사상이 우리 가슴에 어떻게 다시 살아 나올 것인가? 진정으로 개
혁정신이 없는 신자에게서는 개혁주의는 살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
면 개혁주의의 형식만 붙잡고 있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개혁주의자가 아
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서 개혁주의가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내용까지 온
전히 버리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나간다면 결국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무분별한 열린 예배나 성공만을 목표로 하는 정책 방향 선회는 한번 잘못되
면 바로잡기 어렵습니다. 목회는 작은 보트가 아니라 큰배와 같아서 방향 선
회가 쉽지 않습니다. 이는 작은 교회나 큰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교회
니까 이렇게 저렇게 방향 선회를 자주 바꾼다면 혼란스럽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사상이 있을 
때 이 시대에 다시 개혁주의로 살아 나올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은총이 
날마다 우리의 심령에 새롭게 경험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마치 태양이 날마다 
떠오르면서 오늘을 비추듯이 이 시대
를 살아가는 우리를 비추는 빛을 날마다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변해서는 안 될 부분과 변해야 할 부분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안일한 개혁주의에 앉아서 형식만 고집하지 않고 진정한 개혁주
의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낡은 보수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 진리가 우리 속에 있을 때 오늘날 진정한 개혁주의
는 나타날 것으로 믿습니다.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며 이 시대를 이기고 
나가는 교회와 교단이 되도록 힘쓰기를 기원합니다. 

교회의 나아갈 길과 교단의 나아갈 길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교회들의 
문제가 곧 교단의 문제가 됩니다. 다만 크게 표출이 되지 않을 뿐이지 교회들
이 갖고 있는 어려움, 극복해야 할 과제 등이 교단의 과제가 되어서 나아가
야 할 것입니다. 사회에 비취는 교회의 모습은 곧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이웃과 직장입니다. 바른 생활이 저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등대가 될 줄
로 알아서 바른 신학이 바른 교회를 통하여 성도들의 바른 삶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