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공동체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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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공동체가 아름답다

나종천 목사

지난 제85회 총회시 가결되었던 전국 노회에 수의한 헌법(정치) 수정안이 
잘못된 집계 실수로 인해 부결을 가결로 선포된 사건에 대해서 총회장의 사과
의 글은 우리의 연약함이나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내어 사
과한 용기는 개혁을 향한 아름다운 헌신의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추사의 글에 이런 것이 있다. ‘소창다명 사아구좌'(小窓多明 使我久座). 조
그만 창이 밝아 나로 하여금 그 앞에 오래 앉아있게 한다는 말이다.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질줄 알아 마음을 비운 이번 총회장 이하 총회
임원들의 결단을 추사의 ‘소창다명 사아구좌'(小窓多明 使我久座)라는 말로 
격려하고 싶다.

록키히(Roakeach)라는 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오래 전에 암살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에 대해 교회에 다니는 사람보다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
이 훨씬 더 깊은 동정과 애도를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곧 크리스챤이 크리스
챤이 아닌 사람
보다 더 차갑고, 더 무관심하고, 더 인색하다는 조사 결과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러나 싫지만 그와 같은 결과를 우리는 지금도 인정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단이 이런 일을 더 이상 보지 않기 위해서도 이
번 총회의 용기 있는 결단과 같은 새로운 운동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그 새로운 운동은 맡은 일에 성심껏 일하며 책임을 질 줄 아는 자로 설 때
에 더 이상 차갑거나 무관심하거나 인색하지 않는 세상을 주도해 가는 교회
와 교단이 되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짓 나를 먼저 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거짓 나
를 버리기 위해서는 늘 빈 마음을 가지고 맡은 일에 성실한 자세가 필요하
다. 거짓 나는 어리석다. 거짓 나는 반듯이 어떤 것을 채우려고 한다. 거짓 
나는 이미 현실화된 것을 만족하지 않는다. 30평에 사는 사람은 40평을, 40평
에 사는 사람은 60평을 갈망한다. 이사 가는 날 그렇게도 넓어 보이던 집이 
한 달도 못 가 그렇게도 좁아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서울 시장으로 취임했다
가 며칠이 못되어 물러간 어느 사람처럼, 농지를 불법으로라도 변경 시켜 자
기 집 정원으로 꾸미고 싶어한다. 그
러다가 자동차로 정원을 한참 들어가다 
본체가 보이는 대저택을 소유하는 엉뚱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혹 교단과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서 그런 엉뚱한 꿈을 꾸고 있지는 않는지 깊
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제 멈추어야 한다. 물러서야 
한다. 소유욕이 지속되는 한 모든 기쁨은 유보된다. 기뻐할 시간이 없다. 찬
양할 시간이 없다. ‘보다 많이, 보다 오래’에 집착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
슨 감격과 감사가 자리 잡겠는가. 물러선다는 것이 무능력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거짓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일 것이다. 물러서는 것이 
아름답다. 멈추는 것이 아름답다. 한계 안에서 머문다는 것이 중요하다. 물러
서서 더 이상 갈망하지 않는다면 내가 나다워질 것이다. 그때 비로소 평안을 
맛볼 것이다. 거짓 나의 욕심을 부채질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거
짓 나의 욕심을 가라앉히고 보다 고귀한 것에로 우리의 눈을 향하게 하는 것
이 성령의 역사이다. 

흔히 ‘마음을 곱게 먹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곱게 먹으면, 아무리 미
운 사람도 고운 사람으로 감각된다. 고운 사람과 미운 
사람이 원래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 “내가 너를 용서해 주겠다”는 말도 기실은 내 시선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용서란, 나는 전적으로 옳고 상대가 전적으로 
그르다는 판정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인간사는 다 상대적이어서 엄격히 말하
자면 그런 종류의 판정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상대방
의 실수보다 내 실수가 더 크게 감각될 수도 있다. 마음 한번 달리 먹으면 내
가 용서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내게 대한 상대방의 용서를 먼저 구해야 할지 
모른다. 

이번 총회 헌법 수정안의 사건을 가지고 총회장과 임원들이 보여준 그 용기
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인식 전환의 개기가 되어 책임을 전가하는 공동체
가 아니라 책임을 질 줄 아는 그리고 물러서기를 기쁨으로 아는 기회가 되었
으면 한다. 사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생의 규칙인 형태를 생각해 
볼 때마다, 애초 가져온 것이 없는데 잃은 것은 또 무엇인가? 마음 한번 달
리 먹으면,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뜨거운 감격의 연속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