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고행과 예수님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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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고행과 예수님의 십자가

 

기독교 역사 가운데는 항상 고행을 통한 금욕주의자들이 존재하고 있다하지만 욕망을 절제하는 성도의 자세와 잘못된 금욕주의는 그 의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타락한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마땅히 욕망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의 만족을 얻기 위해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성도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고행을 택하는 금욕주의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금욕주의는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인 고행을 통해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려는 태도를 말한다그것은 선한 생각이 아니라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 발생하게 된다.

 

과거 중세에는 종교적 고행과 금욕을 통해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고자 애쓰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그들 가운데는 평생 외로운 은둔생활을 한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심지어는 자신의 신체를 자해하는 이들도 있었다그렇게 함으로써 신에게 더욱 가까이 나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 시대에도 일부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적절한 고행에 참여하는 것이 종교적인 미덕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많이 있다하나의 극단적인 예를 들면 자기 몸을 십자가에 매달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손과 발에 대못을 박는 행위를 선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결코 고행과 금욕을 장려하거나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인간들이 흉내낼 수 없는 특별한 메시아 사역이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일은 결코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모본이 되기 위함이 아니다거룩한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엄청난 고난을 당하신 것은 죄에 빠진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절대적 사역이었다.

 

우리는 타락한 인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해 보려는 그 어떤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들을 경계해야 한다감히 하나님의 아들이 당하신 고난을 따라하거나 흉내내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오만한 심성에서 발생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그 어떤 고행을 행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우리는 단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당하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에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