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지변과 성도의 태도
지난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해안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지진과 해일(쓰나미)로 인해 일본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큰 참사를 당했다. 여러 도시와 고을이 폐허가 되고 인명 피해도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지금까지 집계된 수치만 보아도 인명피해가 사망과 실종이 2만 7천 명을 넘는 상황이다. 재산 상 피해는 한국의 한 해 예산보다 훨씬 많은 347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리더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일본의 자연재해를 보면서 “일본이 많은 우상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다” 혹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여 36년 동안 억압 통치를 하고 한국에 크나큰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죄값을 받는 것이다”는 등의 생각으로 일본 사람들을 두 번 죽이고 듣는 이의 마음을 서글프게 만든다. 사실상 일제의 악랄한 핍박을 경험한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생각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일본의 지진과 해일은 하나님이 일본인들의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 발생하게 하신 것인가? 그것은 그렇지 않다. 이번 일본의 자연재해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교훈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견해는 사건에 자신의 감정이입을 하여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양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자연 재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이 세상천지를 하나님의 지혜로 아름답고 완전하게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말씀하실 정도로 완전하게 창조하셨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로 인해 인간은 물론 자연까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창 3:14-19).
그래서 바울은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19-22)고 설명한다.
우리는 이런 자연 재해를 경험할 때 다른 사람의 죄를 기억할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 자신의 죄를 기억해야 한다. 만약 이번의 일본 재앙이 일본인들의 우상숭배 때문이라든지, 일본인들이 한국을 침탈한 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1979년에 발생한 미국의 스리마일 섬(Three Mile Island)의 원전사고, 1986년에 발생한 러시아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2004년에 발생한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재해,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진도 7.0의 대지진 등은 하나님이 어떤 대상을 심판하기 위해 발생하게 한 사고라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나라에서나 다른 나라에서 큰 자연 재해가 발생할 때 예수님께서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4-5)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재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돕는 길을 찾는 것이 성도가 가져야 할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