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에 의한 결정, 언제나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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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에 의한 결정, 언제나 옳은가?” 

장재훈 목사_내흥교회

한국교회사에서 가장 부끄럽고 회개하고 통회 자복해야 할 잘못된 결의가 있
었다. 일제의 압박에 못 이겨 총회가 신사참배(神社參拜 : 황실의 조상이나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을 神으로 모신 사당에 절하고 비는 것)를 결의한 사건
이다. 

조선예수교 장로회 제27회 총회(총회장 : 홍택기)는 1938년 9월 9일부터 15일
까지 평양 선문 밖 교회당에서 열렸다. “아등(我等)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
고 기독교의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 본의(本意)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
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고,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이행하고 추(追)이 국민정
신 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하에서 총후(銃後) 황국시민으로서 정성을 다
하기로 기함”(제27차 총회 회의록). 

이미 천주교에서는 1936년 5월 교황청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신사참배를 시행
하였다. 기독교계에서는 1938년 2월 6일 전국에서 가장 교세가 큰 장로교 평
북노회가 일제에 굴복하여 신
사참배할 것을 결의했다. 9월 장로교 총회에서
는 전국 23노회 중 17노회의 찬성으로 신사참배와 국민 정신총동원운동에의 
적극 참여를 결의했다. 다수에 의한 결의로 교회가 행한 우상숭배였다. 

현재 노회를 비롯한 각 교계 단체(한기총, 교회, 총회, 교회모임 등)에서는 
크고 작은 일과 안건에 대하여 찬, 반 이견이 있을 경우 민주주의 원칙과 방
식인 다수결에 따라 최종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주목하
고 고민하고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민주주의가 아니고 신본
주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세상에서 비교적 다른 제도보다 나은 것이라 
해서 도입한 것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인본주의이지 신본주의(성경주의)가 
아닌 것이다. 물론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불완전하고 미숙하고 무지하고 악하고 분별력이 약한 사람에 의해
서 담합과 오판과 독선 그리고 이기적으로 몰아갈 여지가 많다는 허점이 있
다. 그러나 신본주의(성경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과 방식이므로 완전하
다. 물론 잘못된 확신과 해석으로 인하여 약간의 오류는 있을 수 있지만 말이
다. 

노회, 한
기총, 총회, 교회, 모든 교회(신자) 모임은 하나님이 주인이며 하나
님의 뜻대로 시종(始終)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두 사람의 입김과 로비
(lobby : 어떤 공작)나 주관에 따라 해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런 일들이 종종 있었고 지금도 정도의 차이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
치적인 소수의 사람의 입김과 영향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신구약 성경에도 다수든 소수든 성경적이지 않은 결의로 행한 바 불행을 당
한 사례들이 한두 건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마태복음 27장을 들 수 있다. 예
수께서 잡히시어 총독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시는 내용이다.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다수)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다. 명절을 
맞이하여 빌라도는 모여 있는 군중(다수)에게 “누구를 놓아주기를 바라느
냐?”고 묻자 무리(다수)는 그 당시 살인자요 악한 죄수인 ‘바라바’를 놓
아 달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
다. 결국 빌라도는 다수의 요구에 굴복하여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는데 허락을 하고 만다. 그 외에도 다수의 유대인들이 혐의가 없는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죽이는 사건이 있었다. 무지와 불신앙의 결과였
다. 

교회 밖에서의 사례도 얼마든지 많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대표적
인 곳이 국회이다. 당리당략에 따라서 중요한 국가 정책들이 졸속으로, 다수
의 힘으로 입법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어떤 규
정과 원칙과 방식을 정하고 결의할 때 그 시작과 과정과 결의가 성경에 달아
보고 일반 정서에 비추어 보았을 때 충돌이 있느냐 없느냐를 심사숙고해야 한
다는 것이다. 그래야 오판과 불행을 좀더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 의견이든 소수 의견이든지 그것이 성경의 지지를 받고 그리고 편협된 일
부 사람들이 아닌 비교적 건전하고 객관적인 사람들의 일반 정서와 상식에 맞
아야 된다. 한두 사람의 문제를 놓고 분립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노회 등 각종 단체는 그래도 다수결에 의해서 할 수밖에 없지만 그 
추진 과정과 절차 그리고 결의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되 ‘그것이 성
경적인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인가?’를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묻고 기도한 
후에 추
진해야 한다. 다수가 결의했으니까 ‘괜찮다’ ‘반드시 옳다’로 가
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두 사람이라도 “이것은 이러 이러한 성경 말씀에 맞지 않다”라고 문제를 
재기할 때 충분한 토론과 묵상과 기도와 재점검을 통한다면 더 좋은 결과들
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혹 결의를 했어도 후에 성경에 근거해서 명백한 오
류가 발견되면 과감히 재고하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일사부재리
(一事不再理) 원칙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 안에서만큼은 다수의 
결의라 해서 밀어붙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