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청산’과 진정한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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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청산’과 진정한 회개

김영재 교수/ 합신 

정부와 여당이 ‘과거사 청산’을 정책으로 내세워 실행하려고 한다. 그런 일
은 제 삼의 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있으나 막무가내다. 

해방 이후에 친일 인사들은 한 때 ‘민족 반역자’로 간주되었다. 북한에서
는 친일파가 완전히 거세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공산주의 사회 혁명의 한 과
정이었다. 친일파뿐 아니라 지주 등 가진 자와 지식인, 기독신자들도 반동분
자라고 단죄되어 숙청을 당하거나 사회에서 거세되었다. 그들 중에는 독립 운
동을 위한 자금을 조달한 이들도 있었으며 조국의 자주와 독립을 위하여 육영
사업을 하거나 일본자본에 대항하여 민족자본을 형성하거나 상권을 지키려고 
투쟁한 이들도 있었다. 

해방 이후 공산주의냐 아니면 자유민주주의냐 하는 이념 대립에서 남한에서
는 공산주의화된 북한과 남한 내의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이승
만 정부는 친일 인사들도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세력으로 규합하였다. 그리
고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처럼 극렬한 사회혁명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므로 친
일 인사들에게 관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
부 때 보수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일본군 장교로 복역한 이들은 
군사전문가로서 국군창설에 기여했으며 공산주의 반란을 진압하고 6·25 전쟁
에서 나라를 수호하였다. 그리고 기독신자들을 포함하여 이북에서 생존권과 
생존의 의욕을 상실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남한으로 피난해 와서 함께 살며 대
한민국 건설을 이룩해 왔다.

요컨대 남한에서는 친일을 한 이들이 우여곡절이 많은 역사의 과정에서 이미 
면죄를 받고 속죄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친일 행적 여부의 조사의 표적
이 되고 있는 박정희씨만 하더라도 비록 독재를 했으나 나라의 경제 건설을 
이룩한 공로자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국민들은 손꼽
고 있다. 그것은 그의 그러한 공적이 과거사를 속죄하고도 남는 것으로 간주
한다는 뜻이다. 

오늘에 와서 새삼스럽게 과거 청산이라고 하면서 친일 인사를 색출하고 그 행
적을 조사해야 한다는 것은 역사를 해방 후의 이념 갈등 시
대로 되돌려 놓는 
소행이다. 그것은 무려 반세기 이상을 함께 살아온 현대사를 간과하고 부정하
는 것이다. 

이제 와서 일제 시대의 과거사를 꼭 청산한다면, 독립 유공자들을 찾아 잘 대
우하고 정신대 할머니들처럼 특별히 억울함과 치욕을 당한 이들을 일본 정부
의 대응과는 관계없이 충분히 위로하고 대접하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 삶의 
터전을 잃고 북으로 이주한 유민들과 독립군의 후손들을 여태까지와는 달리 
자랑스런 우리의 동포로 대해야 한다. 그리고 나라를 일제에 판 매국노의 자
손들이 조상의 땅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한다는데, 그런 일은 묵은 법 조항에 
매여 판결할 것이 아니고, 필요하다면 새로 입법을 해서라도 민족사의 거시적
인 시각에서 판결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역사의식을 가지고 되돌아보아야 한다. 일제하에서 우리 
온 민족이 피해를 보았다. 분단국이 된 것도 일제의 강점에서 시작된 것이
다. 1919년 독립 만세 운동에는 온 민족이 참여했으나 일제의 핍박이 가중되
자 많은 지성인들이 일본에 부역하였다. 교회는 신사참배에 굴복했으며, 온 
국민은 일본 이름으로 개명을 해야 하는 치욕
을 당했다. 이에 대항하여 버틴 
사람은 극 소수였다.

일제하에서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 온 그 때를 생각하면 통분을 금할 수 없
다. 온 민족이 모두 함께 부둥켜안고 울어도 시원치 않을 일이다. 백성들이 
반세기를 함께 살아왔으면서 이제 새삼스럽게 그 때 일을 가지고 반목과 분쟁
을 일삼는다면 우리는 너무나 비참한 백성이다.

평화통일을 위하여 북한과도 화해를 도모하며 교류의 물꼬를 텄다. 개성에 경
제 특구를 만들고 남북의 철도를 관통하여 시베리아로 진출하려는 웅대한 계
획을 가지는 이러한 시점에, 아니 그러면서도 북한과의 관계에서 언제 어떻
게 야기될 지도 모르는 위기에 늘 긴장해야 하는 시점에, 국민의 분열을 유발
하는 과거사 청산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사죄, 용서의 복음을 맡은 교회는 
화해와 일치를 호소하고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런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다. 세상이 두려워서이기보다
는 화해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으로는 너무나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
회가 신사참배의 과거사를 진정한 회개로 말미암는 화해의 결실을 보지 못하
고 분열의 역사를 거듭하며 살아
왔으니 말이다. 독일 교회의 지도자들은 히틀
러에 부역한 사람이나 반대하여 옥고를 치른 사람이나 모두가 자리를 같이하
여 나라의 불행이 “우리의 죄와 나의 죄로 인하여” 초래되었노라고 다니엘
서 9:15-19의 말씀을 읽으며 함께 회개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를 하나로 
유지하였으며 나라의 통일도 이룩하였다. 국토의 분단과 오늘의 국론 분열이 
우연한 일이 아님을 교회는 자각하고 우리부터 하나되기를 힘쓰며 하나님 앞
에 애통하며 용서와 자비와 도우심을 빌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