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맞아 되새길 교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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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맞아 되새길 교훈들 

김재성 교수/ 합신

한 해가 기우는 절기에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계적인 축제일이 위치하
여 다소라도 인간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 세상은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사람들과 그 기회를 엿보아서 무엇인가 하려는 사람들로 나뉘어지고 있다. 하
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아기로서 이 세상에 찾아오신 의미를 왜곡하는 무리들
은 이들 양편 모두 속에 숨어있다고 해야 정당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한
국교회는 과연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가르쳐주는 인류 구원의 사명
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가를 내부적으로 철저히 반성해야만 할 시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그분에게만 충성과 헌신을 드린다
고 하는 신학이 형성되어진 것은 복음서에 대한 정경 여부를 결정짓는 4세기 
초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요한복음 1:14)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연구하여 마침내 325년 니케야 종교회의에서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으
로 된 한 분 하나님의 교리를 형성하였다. 그 후로 오늘날까
지 성육신을 포함한 모든 기독론적 주제들은 삼위일체론과 분리할 수 없는 연
관성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이 신비적으로 결합한 양
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론을 정립하여 451년 칼세돈 신경에서 통일을 이루게 
된다. 그리하여 삼위일체론에 뿌리를 둔 기독론에서부터 성경의 근본진리들 
즉 창조, 계시, 구원, 교회, 성례를 설명하는 교리적 기초가 세워지게 되었
다. 

계몽주의 이후로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대상으로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
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서 복음서의 신화라고 주장하고, 머리로 풀어보
려는 이성주의가 기독교의 역동성을 파괴하여 버렸다. 바로 여기서 한국교회
는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뿜어져 나왔던 감격과 감동을 성탄절에 다시금 회복
하고 발휘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있게된 것은 
바로 성자의 영원한 사랑의 희생정신이라고 바울 서신은 풀이하고 있다 (빌 
2:5-8).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그리스도가 찾아오신 
교훈을 실천해야할 시
점이다. 강도 만난 사람의 친구가 되라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지금 한국교회
를 통해서 이 땅의 얼어붙은 추위와 한파를 녹여야 한다. 

타국만리에서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푸대접하고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
며 노임을 착취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횡포를 고쳐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한 중국 동포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결정을 한국교회가 맡아서 감당해
야 한다. 한국교회는 카드 빚에 휘몰린 사람들의 정신을 고쳐주고, 부부싸움
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보듬어 안아야 하며, 갈곳을 잃고 헤매는 노숙자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어야할 과제가 있다. 중국 변경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
고 있는 탈북자들을 위해서 좀더 많은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약
자와 병자와 아이들과 버려진 자들에 대해서 편견을 버리는 것만이 예수의 탄
생과 감동을 이 땅위에 되살리는 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오늘의 시대에 빛과 등불이 되고 있는가? 한국 교회의 연
합단체들은 결코 이러한 과제들을 소홀함이 없이 돌아보아야만 한다. 엄청난 
자금을 낭비하면서 한기총 초청 기독교 지도자들의 잔치가 어느 
호텔에서 있
었다고 한다. 그것도 어느 회장의 재선을 위한 전초전이라는 해석이 파다하
다. 해마다 년 말이나 연초에 교단장들의 모임들이 호텔 등지에서 많은 물질
을 허비하고 있으며, 각 교회의 각종 모임들도 역시 그러하여 안타깝기만 하
다. 무엇인가 한국교회는 지금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스도에
게 연결된 교회와 그 연합단체들은 권세와 손을 마주 잡거나 오락을 위한 공
동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육신적으로나 혈통
적으로나 자랑하고 내세울만한 것이 아닌 가문에서 나오셨다. 그분은 다말과 
라합과 우리야의 아내와 룻의 혈통에서 나셨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첫 페이지
에 실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속에서 너무나도 선명하게 이방 여인들의 이름
을 거론하는 마태의 의도를 읽어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수많은 죄인들을 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예수님은 혈통적으로
나 육체적으로 영향을 입고 낳으신 분이 아니시다. 하지만, 의인들의 반열에
서 나오지 아니하시고 오래 전부터 타락하고 부정하며 짓밟혀진 몸을 통해서 

이어진 족보를 부정하다 아니하시고, 그 사이에서 나오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의 한국교회는 지금 그리스도인이 된 자신들의 모습을 
왜곡하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자들만의 모임으로 외
식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먼저 나와서 공로를 세운 기득권자들만의 써클로 변
질되어가고 있으니,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섬김의 모범
이 되신 아기 예수 앞에 무릎을 꿇어야할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