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권위와 도덕성의 회복을 기원하며
김영재 교수
고양시 시민들이 학교 주변에 러브호텔들이 마구 들어서는 것을 참다못해
시 당국의 무분별한 허가를 철회해 줄 것을 진정하다 못해 시가행진을 함
으로써 항의하는 한편, 지방세 납부 거부 운동을 선언하고 나섰다. 화면에
비친 대로 꼴불견의 러브호텔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광경이 가관이다. 당국
자들이 어떻게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한심한 생각이 든다.
학생들의 정서와 교육을 생각하여 항의하는 시민들이 갸륵하다고 여기면서
고양시에는 교회들도 많이 있을 터인데 어떻게 반응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든다. 시민들보다 먼저 경고하며 소리를 질러야 할 교회가 시민들의 움직
임에 참여하여 주도적인 역할이라도 하는지 궁금한 생각이 든다. 아니 그
것은 그 곳 지역 교회의 몫만은 아니고 전국의 교회들이 당국에 진정을 하
고 항의해야 할 일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은 유감스럽게도 주변의 도덕성이나
사회 정의에 대하여는
둔감한 편이 아닌지 묻게 된다. 그렇다면 왜 그런
것일까? 정당들과 위정자들이 내세우는 개혁의 구호를 식상할 정도로 듣고
있으나 개혁이 수행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된 비리에 익숙해져서이거나 아니면 감염되어
서 그런 것일까?
준법 정신의 해이, 개인적인 이기주의, 공중도덕의 취약성, 집단 혹은 지역
이기주의, 세계에서 상위를 기록하는 교통 사고, 퇴폐문화의 무분별한 유
입, 여전한 선거시의 금품 살포 등등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병폐를
나열하다 보면 거기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교회
는 도덕적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며 선지자로서의 기능을 다해
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세상이 우러러 볼 수 있는 권위와 도덕성
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모두가 시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도덕성이 어떻게 실추되었
는지 반성하며 회개함으로써 교회의 도덕성과 본래적인 기능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교회의 도덕성은 그리스도 개개인의 도덕성의 총화
는 아니다. 이 사회에
나서 자라며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성이 사회의 도덕성의 지수를
크게 웃돌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고 경건하며 도덕적인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도
록 교화를 받는 사람들이며 이제 그러기를 시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권위와 도덕성은 교회가 교회다운 표지를 제대로 갖추는 데 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와 성례가 있어야 하고 권징이 있어야 한
다.
교회의 도덕성을 두고 대표가 되며 책임을 져야할 이들은 교회 즉 교인들
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성례를 집례함으로써 섬겨야 하는 설교자, 즉 목회
자와 교회를 함께 치리하는 장로들이며 그들로 구성되는 치리기관이다. 그
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한국 교회에는 교회의 순결과 도덕성을 위하여 불
가결한 권징이 시행되고 있지 않다. 권징을 상실한 교회가 된 원인을 여러
가지로 들 수 있겠으나 가장 큰 원인은 한국교회의 무분별한 분열에 있음
을 명심해야 한다.
교단들이 교세 확장에 열을 올리면서 서로 경쟁하는 자체가 우선은 비윤리
적이다. 교단들
이 난립하여 경쟁하면서 설교자들이 양산되었다. 게다가 교
단 수만큼이나 많은 무인가 신학교들이 서서 설교자들이 범람하다시피 되
었다. 설교자가 너무 많아 옳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곳에 교회의 권위가
설 수 없다. 교회의 분열로 인하여 교회의 치리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 지
대들이 생겨났다. 이단적인 교회도 버젓이 장로교회란 이름을 가지며 심지
어 교단까지 형성한다. 그러나 그것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
권징을 시행하는 교회도 별로 없을뿐더러 교회의 권징에 순복하려는 교인
들도 거의 없음을 예상한다. 권징을 받으면 훌쩍 다른 교회로 가면 그만이
다. 설교자의 경우 목회하는 교회와 함께 다른 교단으로 가버리는 예들도
있다. 이런 부조리에 대하여 의식있는 교단들이 모두 함께 책임을 져야 한
다. 총회장 선거를 깨끗하게 치르고 잘 해 나가는 교단이라면 더 책임의식
을 가져야 한다.
교단들이 교회 연합에 소극적인 자세를 지양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회의 권위와 도덕성 회복에 있다. 금번에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를 계기로 우리 나라와 중국이 범죄자를 상
호
인도하기로 협정을 맺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총회를 앞두고 각 교단 총
대들이 함께 모여 성찬을 나누며 예배하였으므로 이제는 교단들이 상호간
의 권징을 존중하도록 하는 협약이라도 맺게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교회
의 권위와 도덕성 회복은 선교 못지 않게 교회가 연합으로 추구해야 하는
과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