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성찬에 담겨 있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_손재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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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에 담겨 있는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

 

<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

 

성찬식 때 이웃 사랑을 구현하기 위해 연보하는 것은 교회의 전통

   

성찬식은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에 참여하는 교회의 예식이다. 이때 신자들은 성찬이 차려진 식탁, 곧 우리 주님께서 차려주신 식탁인 성찬상(聖餐床)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를 각각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게 된다.

 

이렇게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모든 계명을 잘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처럼 명백한 성찬의 의미에 대해 간과할 때가 많이 있다. 그렇게 된 것에는 성찬식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뜻 깊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1. 하나님과 이웃 관계를 상징하는 성찬식

 

성찬식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의자에 앉아서 목사나 장로들이 가져다주는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혼자서 감격을 누리며 성찬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자기 옆자리에 누가 앉아서 함께 성찬식에 참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특히 일상의 교회 생활을 하면서조차도 성도들 사이에서 교제를 나누지 않다 보니 성찬식에 참여할 때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성찬에는 두 가지의 교제를 전제하고 있다. 곧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웃과의 교제를 드러내는 예식이 곧 성찬식이다. 위로는 하나님과, 옆으로는 이웃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예식인 것이다.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나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을 기억하며, 그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나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그리스도 예수를 기념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성찬은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런데 성찬은 이러한 수직적인 관계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수평적으로 성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도 상징하기 때문이다. 곧 성찬에는 이웃 사랑에 참여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 한 덩어리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서로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빵과 포도주를 ‘나’ 혼자 먹고 마신다는 것으로 한정하지 않고 더 넓게 ‘우리’가 먹고 마신다는 의미로 확대하며, 한 덩어리의 빵을 함께 찢어서 나누어 먹고, 한 잔의 포도주를 함께 나누어 마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성찬과 함께 진정한 성도들 사이의 교제와 이웃 사랑을 다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지역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모든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고 있다는 의미에서 타 지역 교회의 회원들에게도 성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2. 교회의 전통 속에서 보는 성찬식

 

우리는 성찬과 관련한 교회의 전통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곧 성찬과 헌금이 그것이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헌금을 두 번 해 왔었다.

 

한 번은 설교가 끝나고 헌금을 한다. 이때의 헌금은 교회의 경상비를 위한 것이다. 즉 교회에 필요한 재정을 헌금하는 시간이다. 이 헌금은 목사의 생활비를 비롯해서 교회에서 성도들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한 경비라든지 예배당 관리 및 시설 유지 등등 교회를 운영해 나가기 위한 재정을 위한 것이다.

 

이 헌금은 해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재정을 당회와 신자들이 예산을 책정하면 각각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몫으로 자원하여 할당한 금액을 매주 일정액으로 정하여 드리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월정헌금 혹은 주정헌금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작정헌금을 하고 있다. 이것은 교인의 의무 중 하나이다.

 

또 한 번의 헌금은 성찬식 때에 하게 된다. 교회에서는 성찬상 옆에 헌금함을 별도로 마련해 둔다. 그리고 성찬식 때 떡과 잔을 받아서 먹고 마시고 난 후에는 각자 자원해서 이 헌금함에 연보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성찬식 때의 헌금은 교회의 경상비와는 달리 연보의 성격을 가진 ‘구제헌금’으로 드려진다. 곧 교회의 안과 밖에서 필요한 구제를 위한 연보를 성찬식 때에 드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찬식 때 자원하여 별도의 감사헌금을 드리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칼빈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왜냐하면 성찬에는 이웃사랑을 증거하는 의미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곧 성찬에 참여한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겠다는 표시로 생겨난 교회의 전통이다.

 

이때 모아진 연보는 그 필요에 따라 집사회가 주관하여 구제 사업에 쓰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연보는 코이노니아, 즉 ‘성도들의 교제’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웃 사랑’을 의미한다. 교회는 이러한 의미를 가진 연보를 성찬식 때에 행함으로써 성찬에 담겨 있는 ‘이웃 사랑’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자들은 성찬을 통해 주님을 먹고 마시게 된다. 성찬식 때 주님의 몸과 피를 받은 우리는 이제 우리의 이웃에게 그 주님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곧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구제의 연보를 통해 나누어 주게 된다. 이처럼 성찬에는 ‘하나님 사랑’과 더불어 ‘이웃 사랑’의 계명이 잘 담겨 있다.

 

마치는 말

 

성찬은 새언약 시대를 살고 있는 교회에게 있어서 계명을 준수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에 단순히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행위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행위와 더불어 위로는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옆으로는 함께 하나의 교회에 속하여 성도된 이 땅의 모든 신자들을 힘써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혹 교회에서 함께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들 사이에 인간적인 소원함이나 불편함 또는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성찬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교회의 성찬을 통하여 우리는 그러한 잘못된 내용들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우리 주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성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만큼 철저히 이웃 사랑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잘못된 성찬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