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교회협력위원회 사역지 방문기(1) – 안철수 장로(현산교회) 

0
5

남북교회협력위원회 사역지 방문기(1) – 안철수 장로(현산교회) 

1. 일시 : 6월 9일부터 14일까지 (5박 6일)
2. 인원 : 문상득 총회장, 이선웅 부총회장, 임석영 남북위 위원장, 증경총
회장 김정식 목사, 서 호 목사, 신종호 목사, 석일원 목사, 안두익 목사, 안
철수 장로 이상 9인 
3. 방문지 : 접경 전지역

첫째 날

17시에 인천항 출발 단동행 여객선(1만톤급) 특실 4인 1실로 두 방에 나누
어 승선, 정시에 출항.

쾌청한 날씨에 바람이 없어 여기가 바다인가 할 정도로 순항이었다. 짐을 
정리하고 난간에 나와 석양을 보며 각기 사색하였다. 우리가 타고 가는 배
는 한중 합장 단동 훼리로 선장이하 대부분의 승무원이 한국인이고 식당 종
사원과 보안 요원 등은 중국인이었다. 

19시부터 배식인데 정원 600명 규모의 배의 식당이 너무 협소하여 30분가
량 줄을 섰고 육천원짜리 육개장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밤 12시경 잠자리에 들었으나 대부분 선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짙어 지척이 분간되지 않았다. 

둘째 날

당초 단동까지 16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였으나 도착시간이 우리 시간으로 11
시경이었다. 대부분 초행이시라 항구와 단동 시내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인천과 단동 간에는 상인 이른 바 보따리 장사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이 분들이 먼저 하선하고 우리는 12시경에 모든 수속을 마치
고 광장에서 약속한 김부장을 만났다. 

김부장은 전날 새벽 3시에 15인승 버스를 대절하여 천리길을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동 시내까지는 약 40분이 소요되었다. 압록강 하구 지역인데 전형적인 습
지는 반대쪽이고 중국쪽은 수로에 접해 있었다. 60년대 국경협상시 백두산 
절반을 중국 측에 내어주고 이 지역을 차지하였다고 동승한 이 지역 분이 말
하였다. 도중에 차를 세우고 건너편에서 모를 심는 농부 두 사람과 몇 마디 
대화를 하였다. 누구는 좋고 누구는 싫다고 하였다. 담배를 달라고 하였으
나 박하사탕 한 봉지를 철조망 사이로 던져 주었다. 

압록강 철교 앞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 지역과 내륙에서 사역하는 
B씨와 M씨가 합류하였다. 올림픽을 앞두고 여러 가지로 제약을 받게 되어 이
를 감안하여 사역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 지역도 유가 폭등으로 버스에 주유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예정된 경로를 따라 한 시간 쯤 가 압록강 변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
다. 단동교회 집사님이 경영하는 식당이라고 하였다. 여러 가지 시설을 하였
는데 강 건너에서 계속 트집을 잡아 어려움이 많다고 하였다. 손님은 우리 
밖에 없었고 한족 여성들이 수고하고 있었다. 내심 이 식당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고 여러 가지를 감안하여 봉사료를 지불하였다. 

강변을 따라가는 도 중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전쟁 중 압록강 철교가 파
괴되어 가설한 목재가교량의 흔적, 최고 지도자의 자식이 전사한 곳 등. 
수풍댐을 향해 가는 데 도로보수공사로 인하여 통행이 차단되어 아쉽게 우
회하여 가는데 길이 좋지 않아 오늘의 당초 목적지를 변경하여야 하겠다고 
논의 하는 중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갔다. 

순간 버스 앞 유리로 전에 많이 보아 낯설지 않은 산들이 시야에 들어왔
다. 산꼭대기 까지 개간을 하여 민둥산인데다 파종을 했으면 푸른 빛이어야 
하는데 붉은 그대로였다. 누군가 저주 받은 땅이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깜
짝 놀라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집안이라고 하였다. 집안이라고 하면 고
구려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곳으로 막연히 내륙 어딘가로 추정하였는데 이렇
게 압록강 변이라는 것을 몰랐던 터라 놀랐고 일행 대부분이 그러신 것 같았
다.

B씨는 사역관계로 이 지역을 잘 알아 아담하고 조용한 숙소를 접할 수 있었
다. 우리는 민감한 지역에다 초행이라 여러 가지로 긴장하고 조심하게 되었
다. 집안시내는 적은 소도시였다. 저녁을 먹고 강변을 잠시 산책하는데 가로
등이 어둡고 숙소에서 지근거리가 민감한 지역이라 생각하니 속히 가는 것
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셋째 날

어제 밤은 비교적 편히 자고 이곳까지 왔으니 고구려 유적을 돌아보고 가
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일치로 시내 외곽에 있는 유적지에 아침 일찍 갔더니 
9시에 개방한다고 하여 기다렸다가 돌아 보았다. 광개토대왕비 왕능벽화등
을 보았다. 

동북삼성의 관광지 안내는 대부분 조선족이 많아 의사소통이 잘 되는데 유
독 이곳만은 한족뿐이었다. 일행 중 어느 분이 고구려 이야기를 하니까 그
런 것은 모른다고 하였고 대단히 고압적이었다. 

광대하고 광활한 지역의 풍치, 웅장한 산의 생김새와 앞의 푸른 압록강이 
흐르는 이곳이 조상들의 기상이 깃들었던 곳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깊었다. 

당초 목적이 사역지를 돌아보는 것인데 예정에 없던 곳을 보게 되어 유익
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역자 B씨와 M씨는 이곳에서 작별을 하고 아쉬움과 
섭섭함을 품고 그들의 사역에 하나님의 가호가 항상 계시기를 기도하였다. 

생전 처음 가보는 길을 몇 시간이나 갔을까 도중에 몇 몇 소도시를 경유하
며 점심은 소수민족이 먹는다는 밀떡 몇 조각을 길가에서 사서 차안에서 때
우고 해가 기울 무렵 장백산 자락 송강하라는 소도시에 도착하였다. 

지나가는 길이니 백두산 천지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하신 몇 몇 일행을 배려
하여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숙소를 잡고 내일 등정 후 떠나기로 하였다. 

중국은 장백산을 국내외 관광지로 개발계획을 세우고 국제 규모의 비행장 
공사를 다 완공하고 주변도로를 정비 중에 있었다. 이로 인하여 모든 차량
을 원목을 실어나라는 임도로 우회시켜서 비포장 도로를 몇 시간씩 헤매는 
가운데 전체 일정에 차질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철도 신설 공사도 거의 완공되어 레일을 깔고 있었다. 추정컨대 중국 어느 
곳에서도 1박 2일이면 장백산 관광이 가능할 것 같았다. 

일행 중 한분이 한탄하시는 어조로 누구는 바보다. 백성을 굶겨 죽이며 이
게 무엇이냐고 하셨다. 백두산은 없었다.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하고 날이 어두워 가는데 물어 물어서 한 곳을 정하
고 여장을 풀었다. 

–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