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묵상_가시의 사랑_이정우 목사
가시의 사랑
난 가시였습니다 살아있는 무엇이든 사랑하는 누구이든 기어코 상처를 주고야 마는
이런 나를 품으셨으니 당신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오늘 나를 찌르는 가시 나도 당신처럼 안아 봅니다 당신의 사랑이 내 몸에서뚝 뚝 떨어집니다
이정우 목사 은혜의숲교회
꽃 소망_ 이정우 목사
풍경이 있는 묵상
꽃 소망
내밀한 씨방 속 다 내어주고
어느 가난한 시인의 구공탄이듯 사위더니
새벽 한기로 곱게 화장을 하고
마침내 여기 꽃이 되었습니다
하늘로서 내린 본새 오롯이
내 심연에 꽂힌 붉은 책갈피 하나,
주검 곁에 다소곳이 누웠습니다
당신의 세상 어디든 좋습니다
이렇듯 까맣게 내어주고...
어떤 나무_ 이정우 목사
냉기 가득한 동풍
한바탕 쓸고 간 자리에
자라나는 나무가 있다
더 춥고
더 시려야
가지를 내는 나무가 있다
언 손 비비며
하늘로 뿌리내린 내 어머니처럼,
기도가 된 나무가 있다
이정우 목사 (은혜의숲교회)
[시] 세밑 경배_이정우 목사
세밑 경배
이정우 목사(은혜의숲교회)
기도의 무릎에 설움이 내리면
굶주린 가마우지도 머물지 않는
메마른 섬 하나 남몰래 빌어
당신의 나를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부끄러움 잔뜩 껴입고 다다른 세밑,
구름 속 더욱 동뜬 영광으로
반야(半夜)의 미망(迷妄)을 풀치고 계신,
여전히 섬 곁에 계신 당신을 보았습니다
삼백 육십여 번의 해맞이...
[풍경이 있는 묵상] 바다놀이_이정우 목사
바다놀이
이정우 목사(은혜의숲교회)
중년의 바다로 소환된 사내는
휴일에도 허리를 펴지 못하고
거품을 머금은 게처럼
찬거리를 찾느라 바다를 잃었다
갯물에 젖는 줄도 모르는 아이들은
수태 비껴내도 번득이는 물비늘과
덴바람도 빗겨날 줄 아는 갈매기를 불러
어른이 버린 바다놀이를 한다
지독스레 이승의 하늘을 우러르던
어느덧 생의 허리가...
[풍경이 있는 묵상] 물매를 맞으며_이정우 목사
물매를 맞으며
이정우 목사(은혜의숲교회)
무에 그리 뜨거웠길래 너는
무에 그리 견딜 수 없어서 너는
부끄러운 소갈머리 다 게워 내고
여기 쓰러져 물매를 맞고 있느냐
저 미답의 화구(火口)로부터
하늘을 우러러 빛으로 치솟다가
그여는 바다에 떨어지더니
쇠처럼 식어 자기를 후려치는구나
깎이지 않으면 깨어지는 법이라고
자신을...
[풍경이 있는 묵상] 엿기름 추억_이정우 목사
엿기름 추억
이정우 목사(은혜의숲교회)
겉보리를 쭉정이 없이 잘 골라 씻어
하루 동안 물에 담가 불리셨다가
소쿠리에 건져 시루에 안치고
물 먹인 광목 보자기를 덮어 두셨다
사나흘이 지나며 보리는 펄펄 앓았고
어머니의 기도같이 기적처럼 싹을 냈다
한 주일쯤 지나 제 자식처럼 싹이 자라면
어머니는 잘 헤쳐 바람 좋은 그늘에 말리셨다
당신...
[풍경이 있는 묵상] 계곡의 소명_이정우 목사
계곡의 소명
이정우 목사(은혜의숲교회)
풀치는 의문의 힘으로
무명한 세월의 깊이로
지축을 흔드는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냉정한 단애의 벼랑이 되어
내 백성의 절벽을 시험하고
높이만큼 좁아진 하늘과
깊이만큼 자라난 그늘은
기도로 찢고
눈물로 채워
강모래 수풀로 다독여 정수하는
내 나라의 물길이 되고
[풍경이 있는 묵상] 자기부인_이정우 목사
자기부인self-denial
이정우 목사(은혜의숲교회)
돌뎅이 꾹꾹 눌러놓았다
일어서려 벋대는 것들의 밑둥을 자르고
다시는 잎을 내지 못하도록
잔뜩 물을 먹여둬야 한다
나를 위해 우러르던 하늘
세상과 뿌리내리려 했던 사랑
한데 묶어 부인하며
다만 나를 살해한다, 죽으라고 죽으라고
제발 죽어버리라고
일어날 수 없는 의문의...
[풍경이 있는 묵상] 유모차 유감_이정우 목사
유모차 유감
이정우 목사(은혜의숲교회)
손자 손녀 죄다 키워내고도
한나절 쉬는 게 무슨 죄라고
새끼들 대신 폐지 가득 태워
남은 세월 저리 밀고 가시는지
손주 태워 밀다니다 거반 굽은 허리
손자뻘 어린 눈에도 저리 밟히는데
서녘을 넘어가는 무정한 땡볕
버거운 잔등 위 모질기 짝이 없다
당아새가 창궐하는 세상 속
냉과리 같은 우리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