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있는묵상] 줄다리기_이정우 목사
줄다리기
저무는 생애 위로 스며든 바람이
세월의 두 끝을 오가며 속삭인다
흘러간 날들은 저편에서 손짓하고
남은 숨결은 이편에서 기도한다
믿음과 의문은 얼마나 가까워진 걸까
땅과 하늘은 언제쯤 하나가 될까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어디쯤에서 나는
당신의 얼굴을 올려 보게 될까
오늘도 은혜는 당신의 손...
[풍경이있는묵상] 빈 배의 꿈_이정우 목사
빈 배의 꿈
서산이 저녁 황혼에 안기고
동녘이 아침 햇살에 눈뜨듯
나도 당신의 것이 되려
나의 돛을 내리게 하소서
밤이 낮에 맡겨 살고
낮이 밤에 맡겨 죽듯이
당신의 빈 배에 맡겨
죽음과 생명의 강을 건너리다
강물에 잠긴 별빛같이 흐르리니
내 그리움 동뜬 하늘에
나를 반기는 당신의 얼굴,
둥그...
[풍경이 있는 묵상] 대나무에게_이정우 목사
대나무에게
너는 옹고집이다
오뉴월 광풍과 땡볕에도 시들지 않는
사철 푸른 손짓으로
뭇사람을 하늘로 들어 올린다
너는 울보다
달빛 바람 한낱 는개에도 신음하고
천둥 맞는 날에는 통울음으로 솟구쳐
가난한 시인의 밤을 적셔 놓는다
너는 바보다
또 이겼노라 봉인된 마디마디마다
수고했다 얻...
[풍경이 있는 묵상] 절벽 앞에 선 기도_이정우 목사
절벽 앞에 선 기도
높이를 벗어낸 물은
낮은 곳을 포기하지 않는다
온갖 헤아림과 석별하고
돌과 벽을 길의 문맥으로 다듬는다
가슴에 스며든 물숨이 속삭인다
무량한 세월에 무릎 꿇은 열망과
부딪혀 깎여나간 모난 의문들
그리고 마침내 길이 된 절벽들에 대하여
아, 나의 기도는 얼마나
더 ...
[포토에세이] 장마 하늘
장마 하늘
하늘이 한바탕 울고 간 자리
아버지와 우러르던 여린 날들의 별빛이
깨진 꽃병 조각처럼
젖은 가슴팍 위로 흩어져 있었다
우산에 가려진 나의 소년이
내 유년의 몽유(夢遊)처럼
슬픔 따윈 아랑곳도 하지 않고
여전히 하늘을 우러르고 있었다
교만한 육체의 별들이 다 떨어져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내 쇠한 하늘에...
[포토에세이] 왕따와 다솜이_이정우 목사
왕따와 다솜이*
바람에 날려 숲에서 내밀리던 날
아직 싹도 잎도 내지 못한 질문은
하늘로부터 들었을 리 없다
홀로 뿌리내려야 하는 까닭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백(死魄)에서 쏟아지는 뭇별의 소리와
밤새 서걱대며 부벼대는 새밭의 마음들을
홀로 듣고 다독여야 하는 사연을
온갖 연민에 망종(芒種)을 잊고
광야의 ...
[포토에세이] 컬러풀 꽃지_이정우 목사
컬러풀 꽃지
한나절을 달려 느껍게 만난 꽃지
갈매기도 지쳐 날갯짓을 접는데
벋대는 바다를 연신 다독이던 당신
설핏 구름 사이 그저 반갑습니다
소금기 밴 구름에도 그늘지지 않은
하루만치 뜨거워진 얼굴 바닷물에 첨벙, 씻어내니
끼룩끼룩 끼룩끼룩 ……
어스름 하늘에 환영(歡迎)이 가득합니다
이제 더 바랄...
[포토에세이] 동행의 기쁨_이정우 목사
동행의 기쁨
해 아래 새것이 없다셨는데
이리 첫 것이 되는 까닭은 무언가요
영원부터 내린 사랑이라셨는데
아침마다 새로운 건 또 무언가요
당신과 함께 걸으면
풀잎 이슬도 고백이 되어
종일토록 마음 하늘에 반짝이는 것,
당신 외에 다른 까닭 없습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셨는데
당신과 함께 만하면
첫걸음 하는 아이가 되어버리는 ...
[풍경이 있 는묵상] 석축 위의 기도_이정우 목사
석축 위의 기도
세파에 밤낮 들썩이는 철없는 지붕
바람 빠진 폐타이어로 꽁꽁 묶고
흔들림 없이 새벽 예배당을 오르던
노모의 석축 길이 거반 잦아들고 있었다
바람이란 바람은 다 다독이고
빗물이란 빗물은 다 씻어내며
찢어진 문풍지를 빠져나온 기도가
사백(死魄)의 하늘에 더욱 빛났으리라
더는 바람도 빗물...
[풍경이 있는 묵상] 초원 산책_이정우 목사
초원 산책
반야(半夜)를 달려온 햇살이
글썽이는 이슬의 아침을 끌어안고
어제보다 더 짙은 안개로
하루만치 넓어진 초원을 덮는다
안개의 위로를 받은 자리마다
약속을 따라 아침이 일어서고
깊이만큼 자라난 옹골진 그늘들이
뿌리 깊은 초하(初夏)의 잎을 올려낸다
푸른 이랑 사이를 걸으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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