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대숲 치우기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하늘을 쓸듯이 온통 휩쓸려 춤을 추며 우시시우시시 울어대는 대숲의 괴기스러움은 예부터 보고 자란 남녘의 풍경이다. 특히 바람 찬 겨울에 그 소리는 마치 밤새 끊이지 않는 흐느낌처럼 슬펐다.
흙벽으로 된 시골집에 거주했던 어느 겨울. 마당 밖이 바로 작은 대숲이었다. 여전히 청승맞은 그 소리도 싫었거니와 가까스로 들어오는 햇빛을 차단하는 것이 더더욱 마뜩하지 않아 마침내 톱과 낫을 들었다. 손에 힘을 꽉 주고는 대숲을 마구 쳐냈다. 덕분에 햇빛의 영토가 넓어져 집 안이 한층 따뜻해지고 밝아지리라는 기대로 마음이 개운하였다.
그런데 그날 밤, 눈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쳐 지붕의 기와도 떨어지고 난장이 되었다. 찬바람을 막아주던 대숲이 사라지니 허름한 흙벽 집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대숲은 오랜 세월 온몸으로 바람을 묶어주며 그리도 피울음을 울었던 것이다. 그 본심을 읽지 못하고 함부로 낫질 톱질을 해댄 마음 한 편이 오랫동안 시리고 무거웠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에도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며 우리를 지키고 돕는 대숲들이 있다. 당장의 편익 때문에 정작 그 고마운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관계를 절연하고 사는 우매함을 종종 느낀다. 편견에 사로잡혀 상대를 공격하고 개인의 편익을 위해 전체를 못 보기도 하며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평온하고 따뜻할 때는 잘 모른다. 차고 거센 바람이 불어 닥쳐야 그 익숙했던 존재들과 도움들의 고마움을 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왔을 때 텅 빈 대숲 자리에 다시 돋아난 죽순들을 못 보았더라면 평생 가슴이 아플 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