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열 매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
햇살이 따갑다. 들판의 곡식들도 잘 익어 간다. 저렇게 비와 햇빛을 고루 맞으며 식물들은 제 열매를 맺기 위해 성숙해 가는 것이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유명한 시 ‘가을날’의 첫 대목이다. 가을의 멋진 열매를 위해 여름은 성숙의 과정을 제공하는 위대한 계절이다. 그러므로 가을의 소망을 품은 자는 그 모든 뜨거움을 견디며 결실의 날을 기다린다.
바람에 출렁이는 벼들, 외딴 산 속에 저 혼자 숨어 열린 청미래, 기슭의 남천, 개암열매 등 여기 저기 각종 열매가 익어 가는 풍경은 늘 감동을 준다. 사과나 배, 감 같은 이름 난 과일들은 자태나 맛으로 첫째를 다투는 열매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풍성한 정서적 포만감과 기쁨을 선사한다. 한편 모과나 유자, 호두처럼 모양은 울퉁불퉁하지만 그 향과 맛과 열량이 뛰어나서 몸에 좋은 실속 있는 열매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곳, 다채로운 모습의 열매들은 열매라는 그 자체로서 이미 아름답다. 산모퉁이 그 어떤 작고 하찮게 보이는 것이라도 열매라는 현재의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그 지난한 성숙의 과정은 참으로 숭고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할 때, 환경과 삶의 궤적은 모두 다를지라도 성숙한 성도라는 아름다운 열매로 익을 때까지의 치열함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임을 안다. 그래서 제 빛깔과 맛과 향이 깊어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열매들은 이름이 있든 없든 아름답다. 이 아득한 산마을은 각양의 열매들이 은혜로운 햇살에 익어 가는 향기로 그윽하다. 보라, 곧 추수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