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94)| 영문 밖의 교회_정창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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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밖의 교회   히브리서 13장 12-13절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교회가 세상의 중심이 되려는 순간 복음과 신앙 영향력 상실해”

 

교회는 세속적인 정치권력과의 연대를 통해서는 결코 세상 속에서 수행해야 할 교회의 본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복음의 위력과 영향력을 갉아먹을 뿐입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권력을 가진 중심 세력이 되면 복음의 영향력이 극대화되고, 세상 속에서 교회의 사명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허구입니다. 우리는 그렇게나 착한 인간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권력이라는 것이 속성상 자기 자신의 잇속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어서 교회의 선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지도 않습니다. 그간의 교회 역사도 교회가 세상 속에서 권력을 가지게 되면 교회의 사명을 효과적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것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짧은 역사에서도 그것은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장로가 두 번씩이나 이 나라의 권력을 손에 잡았었습니다. 물론 교회들은 큰 기대를 갖고 환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 교회지도자들과 교회 연합기관들은 어느 때보다 권력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한 동안은 국회의원의 반수 이상이 교회를 드나드는 교인들이고, 장관들 대다수가 신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그들이 중심이 된 교회단체들이 조찬기도회를 비롯한 갖가지 명분을 붙이며 뻔질나게 청와대를 드나들고 또 관공서를 드나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구호를 외치며 군중을 동원하는 거대한 모임을 주최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부에서는 종교편향이라고 데모를 할 만큼 교회는 권력과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여도 그동안 한국교회는 이 사회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중심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교회가 이 사회의 권력과 우호적이고 때로는 이 사회의 중심세력인 것처럼 보이는 그러한 시절을 지내오면서 한국교회는 조금도 더 교회다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효과적으로 감당하는 데도 전혀 진전을 이루지 않았습니다. 권력과 가까이 지낸 몇몇 개인이나 단체들이 개인적 편익을 누렸을 뿐입니다.

오히려 수많은 작은 교회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신자들은 권력의 편애를 받고 있다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누명을 뒤집어쓰면서 더 고생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향력의 증대는커녕 전도는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권력과 부의 맛을 보며 편만해진 편의주의와 실용주의적 행태 때문에 이제는 수도 없는 사람들이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신자는 신자가 아니라고 드러내놓고 능멸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는 본질상 언제나 그 사회의 중심세력이 아니라, 변두리 그룹(marginal group)으로 존재합니다. 월터 브루그만의 말을 빌리자면 교회는 그 사회 안에서 외인(alien)으로 존재합니다. 교회는 속성상 세상 속에서 외국인이요, 나그네요, 따돌림 받는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회의 세속적인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과는 턱없이 다른 모습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교회의 진정한 능력과 영향력은 이렇게 해서 발휘됩니다. 별 것 아니어보여서 따돌림 받는 변두리 그룹의 사람들이 세상이 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세상이 할 수 없는 말을 담대히 하는 것을 세상이 보게 되고 그리하여 놀라고 신뢰하고 또 영향을 받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 영향력입니다. 세상에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겠다는 명분 아래 세상 한복판에 자리 잡고 앉아서 너무나 세상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말하고, 똑 같이 행동하고, 세상보다 더 잘되어서 세상의 중심이 되려고 애쓰는 동안 복음과 신앙의 영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억울한 누명과 배척과 거부와 능욕과 수치를 걸머지고 죄인들을 구하기 위하여 묵묵히 도성을 벗어나 영문 밖 고난의 현장으로 나가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예수님에게 나아가야 된다고 권면합니다.

교회가 있어야 할 곳 그리고 나아가야 할 곳은 도성이 아니라, 영문 밖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교회로서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이 사회에서 신뢰받는 소망의 공급자가 되기 위한 길은 이 사회의 중심 세력이 아니라, 영문 밖의 교회가 되는데 있습니다.

계속하여 이 사회의 주류 세력집단으로 남고 싶은 미련과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여 이곳저곳에서 이런저런 모습으로 벌이고 있는 추태를 이제 훌훌 털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영문 밖의 변두리 그룹으로 남아서 신자답게 교회답게 제대로 살아보다가 주님 만날 각오를 하는 것이 이 시대 우리의 지혜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위력은 영문 밖으로 나가는 교회가 될 때 발휘된다는 것을 성경도, 역사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