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93)| 시대의 징조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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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징조    누가복음 13장 1-5절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목회자는 교인들을 섬기고, 정권을 가진 자는 백성을 섬겨야”

예수님은 이 시대의 징조를 알아차리고, 그 징조에 부합하는 처신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시급한 일인가를 매우 단호하고 긴급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눅 12:54-59).

예수님이 말씀하신 시대의 징조란 무슨 신비한 경험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름이나 바람의 방향만 보고도 그날의 기상을 미리 알아차리고 자연스럽게 그에 맞게 반응하며 살듯이,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 가운데서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감지하는 영적 분별력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대의 징조를 알아차리지 않는 것은 무식이나 무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외면하고 모르는 체 하는 외식의 죄라는 것이 예수님의 결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이 시대가 계속 말해주고 있는 징조의 핵심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것과 그러므로 그 심판이 임하기 전에 긴급히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시대의 징조를 말씀하고 있는 바로 그때, 두어 사람이 나서며 충격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빌라도가 여러 명의 갈릴리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여 그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고한 사람들의 의도가 빌라도의 악함을 드러내려는 것일 수도 있고, 죽음 당한 사람들의 죄를 강조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그들은 이 사건이 자기 자신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예수님은 이 사건은 빌라도는 얼마나 악한자인가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빌라도에게 저렇게 참혹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죄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너희는 빌라도에게 죽은 사람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예수님은 이 사건을 접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자신들에게 주는 이 시대의 징조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이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건, 곧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서 열여덟 사람이 치어죽은 사건을 소개하셨습니다(4-5절). 그리고 앞에서와 똑 같은 말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치어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들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서쪽에서 일어나는 구름이 혹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사람들에게 날씨에 대하여 말해주는 징조가 되는 것처럼, 이 사건들이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는 징조는 그 사건을 당한 그들이 아니라, 그 사건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결론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이 주는 시대적 징조의 핵심은 이 사건을 듣고 보고 있는 “너희”는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며,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가 치명적인 재앙(심판)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의 칼에 억울한 죽임을 당했을 때, 그리고 실로암 망대가 무너지며 열여덟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죽지 않은 자기들은 그런 죄에서 벗어나 있다고 안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해석은 달랐습니다. 그 사건들은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살아남은 사람들보다 더 죄가 많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면하고 살아있는 자들이 이 사건을 보고 깨달아 긴급히 회개하라는 시대의 징조라는 것이 예수님의 해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너도 그렇게 죽고 망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경고였습니다. 결국, 그 사건들은 죽임당한 그 사람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면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판정이었습니다.

북한 천지를 호령하던 장성택이 피멍이 들어 두 손이 묶인 채로 군복 입은 두 사람에게 끌려가는 모습은 다만 그 사람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권력의 상징이던 장성택이 저렇게 처참하게 몰락하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것은 눈이 있으면 보고, 귀가 있으면 듣고, 생각이 있으면 깨달아 세상 권력이란 게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가를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매정하고 오만하고 방자한 처신을 긴급히 버리고 목회자는 교인들을 섬기고, 정권을 가진 자는 백성을 섬기라는 시대의 징조요 경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