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좀 더 창의적인 정암신학강좌를 기대하며
지난 11월5일 화평교회당에서 ‘확신 conviction’을 주제로 제31회 정암신학강좌가 열렸다. 화평교회(이광태 목사)의 섬김을 통해 500여 명의 참석자들이 소중한 강의를 접하는 시간을 갖고 성경 중심의 신학과 삶을 세우고자 애쓴 정암 박윤선 목사의 정신을 기렸다. 마침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 초청된 해외 석학 중에 도널드 카슨(Carson) 트리니티 신학교 명예 교수(신약학)가 강사로 와서 복된 시간이 되었고 합신 박덕준 교수(구약학)의 좋은 강의도 있었다.
이번 정암 신학강좌의 의의는 해석학적 혼돈이 가중된 시대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의 역사적 정통 신학과 신앙의 자세를 다시 재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다. 카슨이 제1강 “부활의 확실성‘(요20:24-31)을 통해 ‘부활’과 같은 고전적이면서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 되는 주제를 재론하며 복음적 열정을 격려한 점이 그렇다. 또한 현단계의 한국적 상황에서는 실천적 시의적 문제들에 대한 성경적 고찰과 비판 작업도 의미가 있었겠지만, 제2강 ‘해석의 정당성이 무엇일까?’를 통해 신학의 기초가 되는 올바른 해석학적인 원칙을 개혁주의 입장에서 재확인한 것도 오히려 절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카슨 교수는 갈수록 모호해지는 우리 시대의 지식에 대한 불가지론적이고 회의론적인 자세를 기초로 한 해석학과 인간 중심의 설교의 폐해를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음에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인정하여 성경에 반하는 사상과 해석에 수용적 태도를 초래하는 작금의 상황들에 휘둘리지 말 것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심각한 형편을 가리우며 백성들에게 ‘평안하다 평안하다’ 했던 거짓 선지자들처럼 오늘날에도 청중의 입맛에 맞는 해석과 설교를 지향하는 인본주의적이고 번영주의적인 자세를 추구하는 설교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카슨은 이 다원주의 시대에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 앞에 겸허한 두려움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학과 신앙을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정암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 한다.
카슨의 강의 후 끝으로 이어진 박덕준 교수의 ‘이사야의 하나님 주권 사상’ 또한 현대 신학계의 편집비평적 조류에 반하여 정통적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을 강조한 귀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이번 정암 신학강좌가 아니더라도 성경신학회나 합신 신학강좌 등을 통해 발표했어도 좋았을 법하다. 그 시간에 모처럼 멀리서 내한한 카슨과의 대화를 더 충분하고 깊이 전개했더라면 금상첨화였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주제가 정해지면 선택과 집중을 원칙으로 그 주제에 걸맞은 강의 한 두 개 정도와 그에 따른 논평자가 있어야 하고 함께 토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통상적이고 바람직하다. 정암 신학강좌가 해마다 조금씩은 창의적으로 발전해 가는 것을 기대한다. 일방적 발표 형식은 관습이라 해도 기대할 것이 없고 참신성이 없는 강좌로 만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함께 어우러지는 강좌가 되는 방향으로 힘을 써 주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기왕에 정암신학강좌의 이름으로 성경적 고찰을 하는 시간이라면 시간에 쫓기지 말고 충분한 질의응답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점을 잘 새겨서 내년부터는 연례적인 행사를 넘어 한국교회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모범적 강좌가 되도록 더 잘 준비했으면 좋겠다.
작년에 이어 다시 제안하는 사안이지만 적절한 주제 하나를 미리 정하여 참신하고 적합한 발표자를 선정하고 그로 하여금 1년여의 시간 동안 충분히 집중 연구하여 발표하도록 청탁하며 논평자도 의뢰해야 한다. 그래야 해마다 정암신학강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관심도를 제고하며 학문적 성과도 깊어질 수 있다. 2년 전 종교개혁500주년 기념 정암신학강좌 때처럼 함께 대화하며 주제를 풀어가는 시간도 연구해 보길 바란다. 그래서 창의적으로 발전하는 행사가 되길 빈다.
어쩌면 해마다 돌아오는 행사이기에 주관 주최하며 섬기는 입장에서는 나름의 부담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한번쯤은 본보에 맡겨 정암신학강좌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떻게 하면 더 창의적이고 보람된 행사가 될 것인가. 주제와 강사 그리고 행사 방식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묻고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정암신학강좌를 위해 늘 수고하는 관계자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표하면서 물심양면으로 섬긴 교회들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