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문| 작은교회활성화위원회 여름수련회를 마치고 _ 김오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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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

 

작은교회활성화위원회 여름 수련회를 마치고

 

<김오식 목사 | 빛의자녀들교회>

 

주님을 바라보며 신실하게 목회할 때

하나님만이 주시는 위로를 경험하게 될 줄 믿는다

 

나의 캘린더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변동 없이 예약해 놓은 날짜가 있다. 매년 8월 마지막 주간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진행되는 총회 작은교회활성화위원회 여름 수련회이다. 매년 동일한 기간에 수련회를 가지다 보니 매번 참석하시는 목사님과 사모님은 이 날짜에는 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다고 한다.

3년 전 교회를 개척하고 비슷한 시기에 교회를 개척하신 목사님의 소개로 2017년 작은교회 활성화위원회 여름 수련회에 처음으로 참석하면서부터 올해로 3번 째 참석하게 되었다. 이제는 이 여름 수련회에 참석하는 것이 마치 명절에 고향을 찾아 가는 것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수련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번 수련회는 8월 26일(월)부터 28일(수)까지 2박 3일 동안 부산노회 좋은터교회(김광일 목사)에서 세미나로 모이고 숙소는 울산 갤럭시호텔로 정해졌다. 김광일 목사님 내외분은 오랫동안 작은교회활성화위원회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는데 이번에는 본 교회를 수련회 장소로 제공해 주시고 매시간 헌신적으로 섬겨주셨다. 작은교회활성화위원회 모임을 통해 받는 큰 인상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지난 번 모임은 충청노회 엑스포교회(전병길 목사)에서 모임을 가졌다. 솔선수범하여 나누고 베푸시는 목사님과 사모님의 섬김에 도전과 은혜를 받는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몇 분 목사님 부부와 교회 밴으로 함께 내려가면서부터 이미 수련회가 시작되었다. 그간의 근황을 서로 나누기도 하고 오랜 목회 경륜에서 나오는 선배 목사님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배우는 바가 많았다.

작은교회활성화위원회 여름 수련회의 장점은 독서를 통한 영적 재충전과 목회사역 나눔이라고 할 수 있다. 수련회 한 달 전에 수련회에서 다룰 책을 개별적으로 보내준다. 이번에 다룬 교재는 ‘오늘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크레이그 반즈 저)이다. 사전에 발제자를 정하고 내용을 요약하여 와서 발제 후 토론한다. 특히 책과 관련하여 가장 적합한 신학자를 모셔 강의를 듣는다. 이번에 다룬 ‘오늘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이 책을 추천하신 합신 이승구 교수님을 모시고 강의를 들었다. 이 교수님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나오게 된 배경을 잘 풀이해 주셔서 책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강의에 이어 책의 내용으로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2박 3일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아 많은 부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그 이유는 정답을 몰라서라기보다는 여전히 우리가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며 끊임없이 풀어 나가야 할 과제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문은 “사나 죽으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이다. 답은 “나는 내 것이 아니고 사나 죽으나 몸과 영혼이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답을 아는 것과 정답대로 사는 것은 다른 것이다. 목회자로 부담이 되는 것은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정답을 말해 주나 목회자가 정답대로 사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문의 질문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해 보았을 거라 생각되어진다. 나도 그렇다.

사나 죽으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내 존재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속해 있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고백이요 유일한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목회적 현실과 상황에서 위로를 주일에 성도가 몇 분 오셨나, 지난 달 교회 재정은 얼마였는가. 이게 작은교회 목회자의 비애요 아픔이다. 다시 말하면 생존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은 교회 목회자는 당장 지불해야 할 교회 월세, 길거리로 나가 전도해도 새 식구가 늘지 않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성도들도 그렇지 않은가. 사업을 하는 분들, 매출을 올려야 하는 직장인들은 숫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매출이 오르면 위로를 받고, 자녀가 잘 되면 위로를 받고, 승진이 되면 위로를 받고, 아파트 당첨, 대학 합격, 취업이 되면 위로를 받지 않는가. 나의 유일한 위로를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 속해 있는 것에서 찾기보다는 현실로부터 찾고 있지 않는가.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위로’라는 단어가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에게 그간 무거운 짐과 같은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시대는 ‘위로’가 필요한 시대이다. 일주일간 세상에서 사투하다가 주일에 교회로 오는 성도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하고, 목회자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 세상이 주는 위로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참된 ‘위로’는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위로부터 오는 위로.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 하나님만이 주시는 위로가 참된 위로요, 나의 전인(全人)이 예수 그리스도에 속해 있음을 믿고 오늘도 내게 주어진 목회사역지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신실하게 목회할 때 하나님만이 주시는 위로를 경험하게 될 줄 믿는다. 그러하기에 정답을 알지만 과제는 남아있다. 수련회를 마치고 다시 목회지로 돌아왔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그분이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붙들고 다시 힘내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