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직분과 은사
<이광호 목사, 실로암교회>
“직분에 대한 올바른 회복 없이 한국교회 개혁 없어”
“말씀과 고백에 합치하는 방법으로 직분자 세워야”
교회의 직분은 어떤 경우에도 계급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직분은 세상에서 보여주는 어떠한 명예를 제공하지 않으며 여하한 개인적인 권력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직분은 상호 관계 속에 놓여 있으며, 모든 직분자들은 성도들간에 존재하는 유기적 관계 가운데서 기능해야 한다.
1. 교회의 직분에 대한 이해
교회의 각 직분들은 개별적이지 않고 집합적이자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즉 직분을 맡은 개개인의 능력이 교회 가운데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직분들의 집단적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직분은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어떤 매체가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한 신령한 은사이므로 개인이 중시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집합적 의미와 전체 교회가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분에는 어떤 경우에도 진급 개념이 없다. 진급에 대한 개념이 있다는 것은 직분을 계급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계급적 개념에서 목사가 가장 우위에 있고 그 다음에 장로 그리고 그 다음에는 집사라는 생각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잘못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서는 직분이 마치 계급제도처럼 인식되어 있다. 그래서 교회에 입교하면 일정 기간이 지나 집사직분을 맡게 되고, 그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장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장로는 소위 평신도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양 오해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성도가 한평생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장로가 되지 못하면 신앙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직분관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며 매우 잘못된 생각임이 분명하다. 건강상의 여건이나 특수한 형편으로 인해 직분을 감당하기 어려운 성도라면 비단 신앙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직분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사실상 온전하고 성숙한 교회라면 모든 성도들이 직분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올바르며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목사가 가장 신앙이 훌륭하고 그 다음은 장로, 집사 순일 것이란 환상은 버려야 한다.
직분을 맡지 않은 일반 성도들 가운데 목사보다 훨씬 올바르고 성숙한 신앙인이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고 목사의 신앙이 미숙한 것이 자연스럽다거나 그래도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모든 성도들이 성숙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직분자 선출이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지식이나 은사의 정도가 신앙의 순결이나 성숙도와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2. 직분과 은사와의 관계
한국교회에 고착된 직분의 계급화는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다수의 성도들은 장로가 되기 전에 집사 직분을 맡고 그 다음에 장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집사 직분을 가지거나 장로 직분을 가진 자들 중에서 목사가 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것은 마치 직분의 상승작용 개념이 있는 듯이 비쳐지게 한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그런 현상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입장을 바꾸어서 장로 직분을 가지고 봉사하던 성도가 다시 집사 직분을 가지게 되면 이상한 것인가? 그리고 특별한 경우 목사 직분을 감당하던 성도가 장로 직분을 가지거나 집사 직분을 가지게 되면 강등당하는 것인가?
교회가 회중의 요청에 따라 직분자를 그렇게 세운다 할지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것이 우리 정서에는 전혀 맞지 않다고 여기는 사실은 이미 직분을 계급의 한 형태 내지는 명예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장로, 집사 직분을 맡고 있던 성도가 목사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면, 목사 직분을 감당하던 성도가 장로나 집사 직분을 행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한 개별 성도가 목사, 장로, 집사 직분을 두루 수행할 만한 은사적 능력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점과 교회가 실제로 그렇게 세우느냐 하는 점은 별개의 문제이다.
흔히 목사, 장로, 집사를 항존직으로 말하는데 사실은 이 모든 직분들이 항존직이다. 항존직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종신직과 항존직 사이를 오해하고 있다. 항존직이란 역사 가운데 상속되는 교회 가운데 항시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직분이라는 뜻이며, 한번 직분을 받은 자가 평생 가지게 되는 종신직이라는 의미와는 다른 것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항존직인 집사로 장립을 받은 성도가, 그 직분을 중단하고 장로로 장립되기도 하며 집사나 장로로 장립받은 성도가 그 직분을 중단하고 목사로 장립받기도 하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직분이 개인을 위한 직책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직분이라면 교회의 의사에 따라 새로운 직분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교회의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교회의 의사를 통한 직분자 선임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3. 직분자 선출에 대한 교회의 자세
직분은 교회 내에서 특정인이 가지는 권력이나 통치수단이 될 수 없으며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직분은 도리어 섬기며 봉사하는 방편이다. 직분을 감당하면서 마땅한 은혜의 권위를 가지게 되지만 그것은 개인에게 주어진 권력형 권위는 아니다. 직분은 어떤 경우에도 성도들을 다스리기 위한 통치수단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한국교회의 폐단 가운데 하나는 직분 자체를 권위나 권력으로 생각하거나 명예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감히 누가 개인적 권위를 가지며 권력을 가질 수 있는가? 누가 감히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명예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지역 및 시대교회의 분위기가 그런 식으로 변질된다면 잘못된 자들은 직분이 마치 성도들을 다스리는 통치 수단으로 오해하게 되며 결국 개인을 위해 직분을 도구화하기 쉽게 된다. 설령 그런 악한 의도를 가지고 직분을 이행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부패한 인간은 자기 지향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직분자를 말씀의 원리에 좇아 올바르게 선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성도들이 말씀의 터 위에서 성숙해야만 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성숙하지 못한 교회라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올바른 직분자 선출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직분은 자기의 취향에 의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회중이 기도 가운데 각 성도들의 은사를 확인해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분자는 개인적 성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직분을 맡긴 교회의 의사에 따라 직분을 수행해야만 한다.
교회의 여러 직분들 간에 상호 균형이 맞는 가운데 직분적 사역이 이루어짐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며 전체 교회에 봉사해야 한다. 각기 다른 직분을 가진 성도들은 상호 존중하는 마음과 함께 건전한 견제 기능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는 말
허물어져 가는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해서는 직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수행이 절대로 필요하다. 교회는 말씀과 고백에 합치하는 방법으로 직분자를 세워야 하며, 세움을 받은 직분자들은 교회가 말씀을 근거로 맡긴 직분을 성실하게 실천해야 한다.
다양한 직분들 사이에 경계가 없이 혼합되어 있거나 계급적 경향으로 인한 치우침은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이다. 올바른 직분제도의 확립을 통해 원래의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직분에 대한 올바른 회복 없이는 한국교회의 개혁도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