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기 벗고 신앙의 새 시대 연  하이델베르흐 교리문답과 역사적 배경_이종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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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기 벗고 신앙의 새 시대 연 
하이델베르흐 교리문답과 역사적 배경

이종연 목사_진명교회, 아틀란타 바이블칼리지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신앙고백서들의 탄생 배경을 알 때 거기에는 하나님
의 놀라우신 간섭과 섭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들어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를 비롯해 개혁교회의 일치 신조인 벨직신앙고백, 도르트 신앙고백, 하
이델베르흐 교리문답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신앙고백서들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하이델베르흐 교리문답의 탄생을 중심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우리가 세계 역사에서 다 들어서 알 수 있지만 중세 교회는 오 백년에서 천 
오 백년 사이라고 합니다. 캄캄했다 그래서 암흑시대라고 합니다. 타락한 교
회가 잘못된 힘을 가지고 거짓말로 세상을 주무르던 물론 유럽 사회를 중심
한 얘기입니다.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 천 년 간에도 하
나님께서는 
바른 교회, 바른 믿음의 형제들을 보존해 오셨습니다.

1. 중세 암흑기와 르네상스, 종교개혁

그것을 깨뜨린 것이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한 가지는 르네상스라고 합
니다. 일본 사람은 문예부흥이라고 옮겼는데 물론 이것은 프랑스 말입니다. 
그런 것이 세상에서 한 가지가 있고, 그 다음에 교회 가운데서는 종교개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둘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우리가 확실히 모르지만 하나
님의 섭리 가운데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 두개의 깊은 연관을 놓고 우리가 세계사 가운데 특
히 중세역사를 살핀다면 귀한 것을 깨달아 나갈 수 있습니다. 그 뒤에 바로 
우리들이 믿고 있는 개혁파 신조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겁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 신묘막측합니다. 어찌 보면 성경 계시 못지 않은 섭리 가운데 성령
님께서 이 개혁파 신조들을 만드셨습니다.

2. 개혁신조와 성경번역

그 당시 중세 암흑기를 깨뜨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준비해 두셨습
니다. 물론 여러 가지 성격으로 그 전쟁을 우리가 분석해 볼 수 있지만, 민족
적으로 보면 독립전쟁이 주를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면에는 사실 그것
보다는 종교적인 배경으로 그 전쟁을 똑바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
면 한낱 사람들의 욕심을 평화라든가 또는 인권 등등 사람 편리주의에 슬쩍 
가면으로 가린 전쟁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발생했지만 우리가 교회 역사를 볼 때 초대
교회 때 많은 로마의 박해라든가 그런 특이한 시대 뒤에 우리가 받고 있는 공
동 신조들을 교회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 뒤에 어찌 보면 많은 
좋은 일들로 계속 교회를 붙드셨지만 이 중세 뒤에 교회를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서 바로 개혁신조를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공동신조도 굉장히 중요하지
만 그걸 정상적으로 받은 사람이라면 개혁파 신앙고백을 반드시 고백할 수밖
에 없습니다. 개혁 신조를 받지 않는 사람은 초대 교회의 열매라고 할 수 있
는 공동 신조들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확실하게 받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조보다도 사실 가만히 그 당시 하나님의 섭리를 보면 먼저 
각 나라마다 제 글로 하나님의 말씀을 옮겼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병행된 
겁니다. 성경을 똑바로 옮기고 그
것을 바탕으로 신앙고백을 만들게 되어 있습
니다! 아직 한국에는 이렇다 할 신학, 신앙고백까지는 두째 치고라도, 신학 
자체가 정비돼 있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러니 개 교회까지 가서 보면 저마다 
신앙 생활이 엉망입니다. 다 그냥 자기 맘대로 자기 좋은 대로 개인적으로 합
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래 가지고서는 세계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라든가 또는 이런 개혁 신조들에 얽혀있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뜻을 받기가 매우 힘듭니다.

3. 르네상스의 열매와 반종교개혁

그 당시 세상 여러 나라 가운데서 발생한 르네상스의 열매들을 몇 가지 생각
해본다면 이태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데 단테와 그 다음에 마키아벨
리 등이 있습니다. 그 다음 아주 골치 아픈 나라 스페인에서는 세르반테스라
는 사람이 작품을 냈고, 지금은 체코의 한 부분이지만 옛날에는 보헤미아입니
다만 보헤미아에서는 요한 후스라는 사람, 그 다음 잉글랜드에서는 토마스 무
아 그리고 쉐스피아 이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프랑스에서는 몽떼
뉴, 그 다음 화란에서는 유명한 사람 에라스무스 이런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
로 
종교를 갖고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인간성을 회복한 사실을 세상에 나타냈
습니다. 
지금 이런 사람들의 글을 대개 고전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섭렵한 사람이라
면 종교개혁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고 또 신앙 안에 들어선다면 개혁신앙
을 표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개혁교회랑 개혁신학을 충분
히 받들지 못한다면 어찌 보면 무식하다고 볼 수 있고, 간접이나마 중세 암흑
처럼 그런 스타일로 신앙생활 또는 사회생활을 해나가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
니다. 그런 식이면 로마 교황의 속임수에 먹고사는 것입니다. 한편 그게 편하
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그 무시무시한 걸 뚫고 개혁을 성공하기까지 엄청난 피흘림이 있었습니다. 그
런데 사실 이 당시 개혁을 막기 위해서 속임수 개혁이 있습니다. 소위 반종교
개혁이라고 합니다. 프란시스 세이비어(Francis Xavier)라든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 같은 앞잡이들을 내세웠습니다. 처음엔 일곱 사람
이 동맹을 했는데 1534년 8월 15일 두 사람을 포함한 다섯 명이 합세해서 대
대적으로 종교개혁을 무력화 시켰습니다. 지금도 요런 친구들이 있습니다. 예
수회란 이
름으로 말입니다! 
서강대학교, 모든 천주교, 그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모든 단체입니다. 깔뱅은 
그들을 적그리스도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무수한 개혁파 신자들을 그들이 
주축이 돼서 죽였습니다. 그 뒤 오지리, 지금의 오스트리아인데 당시 그곳은 
1917년 이후 이태리 영토가 됐습니다. 이들이 그곳에서 거의 한 18년 이상 회
의를 열었습니다. 제 18차 종교회의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1545년에서 1563년
까지 걸려 트트신조를 만들었습니다. 그 바탕에 지금 사실 로마교를 움직입니
다. 거기는 말도 안 되는 것 투성이입니다.

4. 개혁신조들과 종교전쟁들

그런데 그 년대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1545년에서 1563년 그 어
간에 개혁신조들이 나왔고 마지막 해에는 하이델베르흐 교리문답이 나왔습니
다 1563년에. 여기에는 엄청난 대결이 있는 겁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
지 그 캄캄한 또는 무시무시한 로마 카톨릭의 칼날을 피해 신앙을 지키고 또 
세상을 향해서 도전적으로 이 고백을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몇 가지 개혁신조, 예를 들어본다면 으뜸 스코치신앙고백(CONFESSIO FIDEI 
SCOTICANA Ⅰ)을 1560년에 만들
었습니다. 그 다음에 벨직 신조(CONFESSIO 
BELGICA)를 1561년에, 그 다음 하이델베르흐 교리문답을 1563년에. 그 다음 
버금 헬베티아신조(CONFESSIO HELVETICA POSTERIOR)를 1566년에, 그 다음 도
르트뤠히트신경(CANONES SYNODI DORDRECHTANAE)을 1618년에, 마지막으로 웨민
스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을 1643년에 만들었습니
다. 그 장소의 이름도 사실 의미심장합니다. 여러 군데서 하나님께서는 끊임
없이 로마 카톨릭을 깨기 위해서 준비시켜 두셨습니다.
눈길을 좀 각 나라마다 싸움터로 돌려보면 그 뒤에는 분명히 종교전쟁입니
다. 중세에 마감한 전후 몇 가지 전쟁을 보면 도이췰란트 농민전쟁이 1524년
쯤 발생합니다. 물론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 뒤에 슈말칼덴 전쟁, 그것으로 
말미암아 아우그스부르흐 종교회의가 열립니다. 굉장히 중요한 종교회의입니
다. 그 다음 가장 처절한 것 중에 하나가 프랑스에서 구교도한테 신교도가 피
흘린 사건 소위 위그노 전쟁입니다. 이게 1562년에서 1598년까지 무려 35년
간 철저하게 신교는 도륙당했습니다. 
그 처참한 참상을 깔뱅은 들어서 압니다. 오늘날도 프랑스는 로마교
가 압도적
으로 주장하는 나라입니다. 그 결과로 낭트칙령이 선포됩니다. 그 다음 또 우
리가 무시 못할 나라가 네덜란드입니다. 아주 오랜 기간동안 독립전쟁을 치르
면서 마침내 유트레히트동맹으로 세상 앞에 떳떳이 나타나게 됐습니다. 이게 
1566년에 1609년 동안 무려 한 40년 동안 스페인을 격파하고 모든 널려있는 
나라를 묶어 만들어진 게 네덜란드입니다! 
그 나라에서 우리가 알지만 개혁파의 대가들이 나왔고 이 하이델베르흐 교리
문답이 가장 꽃 피워진 나라입니다. 그 뒤에는 로마 카톨릭이랑 그 다음에 식
민 통치하던 세력을 꺾어내기 위한 큰 싸움이 끊임없이 계속됐던 겁니다. 이
것 보면 한국은 아직도 먼 나라입니다. 
그 뒤 1600년대 들어서 중요한 것 하나는 도이칠란트에서 발생한 30년 전쟁입
니다. 다른 말로 장미전쟁이라고 합니다. 1618년에서 1648년에 벌어졌습니
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베스트팔리아 조약이 성립됩니다. 이게 다 종교전쟁입
니다. 신교도들이 독립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때 구교의 입장에서 싸운 나
라인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이 세 나라는 지금도 사실 골치 아픈 나라들입
니다.
5. 하이델베
르흐 교리문답의 특장과 얼개

이런 배경 가운데 바로 하나님께서는 종교 개혁을 성사시키면서 개혁파 교리
를 교회에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개혁신조 한 가지 한 가지 볼 
때, 그 뒤에 역사적인 배경을 살핀다면 정말 정금같이 그것을 간직하고 한 
개 한 개 조항, 물음에 대해서 깊이 마음을 기울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 하이델베르흐 교리문답의 첫째 물음이 더 훨씬 마음에 와 닿
을 겁니다. 배경을 안다면. 거기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그대의 유일한 위
로는 무엇입니까 삶과 죽음 안에서?’ 살든 죽든 가장 으뜸인 유일무이한 위
로가 뭐냐 말입니다. 거기 답변은 이렇습니다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 것이라
는 데 위로가 있다.’ 그러면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기가 얼마나 비참
했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어떻게 건져내셨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평생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겠노라고. 그런 내용으로 자기는 자기 것
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의 고백을 
세 가지로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다른 각도에서 분석해 보면 처음에 구원론에 대해서는 사도신경을 

줄거리로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교리문답입니다. 그 뒤에 ‘감
사’ 다시 말하면 성화론인데 어떻게 살 것인가 이야기입니다. 거기에서 십계
명이랑 주기도문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사도신경, 십계명, 주
기도문! 이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런 무시무시한 역사적
인 배경을 담고 첫째 물음을 그렇게 던진 겁니다. 성도들의 위로에 대해서 물
었습니다! 
이게 이 하이델베르흐 교리문답 전체를 휩쓸고 있고 사실 성경 전체를 휩쓴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닌 큰 주제 중에 한 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위로가 값싼 
게 아니고 이런 파란만장한 전투 가운데서 위로가 정말로 값지게 받아들여진
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얘기가 있다고 합니다. 화란에서 있었던 일인데 열 살쯤 되는 어떤 아이
가 중병 걸려서 수술 받았는데 상태가 시원찮아서 죽어가게 돼서 부모는 죽음
이 임박한 걸 알리니까 오히려 이제 꼬마는 아주 떳떳하게 ‘그럼 나 이제 예
수님한테 갑니다’라고 기쁨으로 고백했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사나 죽으나 자기는 자기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것이기 때문에 이제 위로 

을테니까’ 좋다는 것입니다. 그 꼬마가 바로 이 교리문답을 배웠다고 합니
다! 상상 못할 사건입니다.

마치는 말

우리가 보통 구약성경을 보면 굉장히 방대한 무대에서 엄청나게 기록한 것 같
지만 따져보면 사실 유대 나라를 중심한 것입니다. 신약보다는 무대가 훨씬 
좁습니다. 다만 나라라는 형식으로 계시를 담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이끌었
기 때문에 성격이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반면에 신약은 사실 무대는 훨씬 
넓은데도 거기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표현하다보니까 굉장히 아담하게 섬세하
게 그리는 것이 신약 성경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광야를 거친 
뒤에 다시 한번 신앙고백을 철저하게 가르치고 보존할 것을 말합니다. 적어
도 그런 정도라면 여기 세 가지 말로 나오는 것을 보지 않읍니까? 
큰 나라 사람이라는 표현을 받게 되고,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가까이 하기 때
문에 이런 정도로 가까이 하는 신이 없다는 말씀, 그 다음 규례와 법도가 공
의로운 큰 나라. 이러한 칭호를 듣는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이건 그 당시 토
라(율법)를 가리키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그 토라에 해당하는 게 개혁파신조 
입니다
! 이걸 받아서 분명히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이런 칭호를 왜 듣지 못하
겠습니까? 이런 것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신명기 4장에서 가르치는 말씀
도 마이동풍일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것 아닙니까?
우리가 그래서 이 교리문답을 공부하기 전에 역사적인 배경을 잠시 생각해보
면서 정말 집에 보물 단지로 여기자 이겁니다. 그러면 매일 간수하고 갈고 닦
고, 그 효용 가치에 대해서 늘 마음을 기울여 기뻐하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
도 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야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마지막으로 선포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