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역자들
< 이기종 목사 · 합신세계선교회 총무 >
“세계 선교에 보다 많은 역할 하기 위해 협력과 동역 자세 갖춰야”
1980년대 이후 교회의 성장과 더불어 꾸준히 선교사를 파송해 온 한국 교회는 이제 성경과 선교 역사가 주는 경험들을 거울삼아 선교의 본질을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선교에 대한 반성과 본질 회복의 기회를 놓친다면 매우 불확실한 미래를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교회의 선교가 풀어야 할 중요 과제들 중의 하나가 바로 선교 현장에서 ‘협력과 동역’의 문제이다.
한국 선교사들 중 극소수만 팀 사역을 하고 있으며 거의 대부분이 소위 ‘각개전투식’으로 사역하고 있다. 교단, 선교 단체, 교회 그리고 선교사들이 제각기 ‘나름 선교’를 한다.
서구 선교가 오래 전부터 효과가 별로 없다고 결론을 내린 ‘프로젝트성 선교’가 아직도 눈에 많이 띈다. 서구 선교 단체에 소속된 우리 한국 선교사들이 매우 힘들어 하는 부분이 바로 ‘팀 사역’이며 이런저런 이유로 독립적으로 사역하고 싶어 한다.
사도 바울이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로마교회를 향한 서신인 로마서의 16장을 살펴보면 16절 이전의 전반부에서 27명 이상에게 문안을 하고 있으며, 21절 이후의 후반부에 8명의 이름을 더 언급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바쁜 가운데에도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관계를 형성했으며, 여러 사람과 협력하고 동역했다. 사도 바울의 선교 전략을 몇 가지 말할 수 있겠으나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이 ‘동역 선교’라고 할 수 있다.
동역자란 한 가지(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골 4:11),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요삼 1:8), “함께 수고하는 자”(빌 2:25), “하나님의 일꾼”(살전 3:2) 등을 말한다.
바울의 선교 동역자들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롬 16:3), 우르바노(롬 16:9), 디모데(롬 16:21), 아볼로(고전 3:9), 디도(고후 8:23), 빌레몬(몬 1:1), 누가(몬 1:24), 에바브로디도(빌 2:25), 유스도 일행(골 4:11)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가 동역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타락한 인간의 죄성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시기와 분쟁 그리고 이기심이다. 동역하려면 예상되는 갈등을 회피하려는 마음에 연유하기도 한다. 한국인의 기질, 습성에 기인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속담 중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도둑질도 손이 맞아야 한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에게는 협력, 협동정신이 있다. 우리 민족의 풍습 중에 ‘두레’나 ‘품앗이’는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농사일을 함께 했음을 보여 준다.
동역은 하나님과 성경의 요청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고전 3:9). 이제 복음화율이 매우 낮은 지역, 미전도 및 미개척 지역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선교의 남은 과업 성취를 위해서 모두 협력해야 한다. 특히 한국 교회의 선교가 세계선교에 보다 많은 역할을 하려면 교단과 교단, 선교 단체와 선교 단체, 교단과 선교 단체, 그리고 선교사 간의 협력과 동역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 한다. 그리고 반성, 회개에 따르는 우리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롬 16:3)은 있는가? 나에게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 동역자가 있는가? 왜 동역자가 없는가? 다른 한편으로 내가 동역자가 되면 어떨까? 이제는 내가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 만한 동역자가 될 필요는 없는가? 나는 동역할 생각이 있는가?
복음 전파,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초점이 맞춰지고 열정과 헌신이 아름다운 동역자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