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8일의 지혜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믿음과 이성이 논리적으로 모순될 때 이성보다 믿음이 앞서길”
어느 날 오후 진료 시간에 30대 후반의 엄마가 6일된 신생아를 데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왔습니다. 아기가 잘 먹고, 잘 놀고 있는데 체중이 늘지 않고 오히려 태어났을 때 보다 줄었다고 걱정스럽게 호소합니다. 아기는 진찰에서 이상소견이 없었고 건강한 상태였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합니다. 젊은 세대의 결혼문화가 예전과 달라 결혼을 달가워하지 않고 또 결혼하더라도 늦게 하며 아기도 잘 가지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아기를 갖게 되면, 육아와 교육에 대해 관심이 아주 높고 또 열심히 아기를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아기의 출생은 의학적으로도 아주 극적입니다. 양수로 차있는 엄마의 태속에서 엄마에 의존하여 호흡하고 살던 태아가 출산 이후에는 대기 속에서 스스로 숨 쉬며 생존해야 합니다. 따라서 출산은 아기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데 아기는 생존을 위하여 빨리 생리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정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최소 안정기간이 7일 정도 걸리며 길게는 한 달까지도 봅니다. 그래서 생후 1개월까지는 아기를 신생아라고 부르며 특별히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리적 변화에 따라 아기의 체중은 생후 3일까지는 누구나 줄어듭니다. 그리고 생후 7일 정도에 자기 체중으로 회복되며 작은 아기들은 더 늦게 돌아옵니다.
또한 생후 3일 정도에는 체중이 줄어들 뿐 아니라 몸의 혈액응고 인자가 모자라 사소한 출혈도 지혈이 안 돼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생리변화에 의해 오는 출혈을 신생아출혈성 질환이라고 따로 부르고 있는데, 요즈음은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모든 신생아에게 태어나자마자 비타민 K 주사를 놓고 있습니다.
엄마에게 신생아의 생리적 변화를 설명하였더니 엄마는 크게 안심하고 귀가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기 엄마에게 설명을 하는 도중, 성경 속에 나오는 히브리 사람들의 생후 8일에 행하는 할례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의학적으로 보아 신생아에게 행하는 할례(포경수술)는 큰 스트레스입니다. 따라서 꼭 해야 한다면 아기가 생리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시행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천 년 전부터 있었던 신생아의 할례가 안정기에 들어간 생후 8일에 시행되었다는 것은 지금의 저에게 매우 신비롭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하던 할례는 사람들의 경험에 따른 위생학적으로 좋은 관습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생후 8일에 행하라고 명령하심(창세기 17:10)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할례를 시행하는 시기는 관습이나 경험에 의해 가장 안전한 시기라고 사람들이 결정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분명하게 정해주신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수천 년 전에 주셨던 명령이지만 지금의 저는 하나님의 큰 배려와 합리성과 논리성에 감탄합니다. 그리고 일찍부터 언약의 자녀로 자라게 하기 위하여 가장 빠르고 안전한 시기에 좋은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자는 현대의 세상 속에서 믿음 생활을 하면서, 전통적인 주일 성수나 연보 같은 수많은 성경의 말씀 또는 교회의 가르침을 지금의 현실에서 얼마나 적용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도 사회생활에서나 교회생활에서 교회의 가르침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스럽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의 신앙생활에서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나중에야 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는지 이해되었던 일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 항상 저에게 더 크게 유익했었던 것을 경험합니다.
저는 이렇게 신생아 할례를 통해 하나님은 참으로 지식과 은혜가 충만한 분이신 것을 배우며, 중세기 어떤 신학자가 신앙생활에서 믿음과 이성이 논리적으로 모순될 때에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믿겠다는 말에 공감을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