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강박증에서 벗어납시다_ 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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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강박증에서 벗어납시다

 

< 변세권 목사·온유한교회 >

 

“하나님의 신비에 교회를 맡기는 자세 가져야”

 

 

올 여름 유난스런 폭염과 소나기, 열대야로 가을이 언제 오겠냐 싶었는데 살갗에 닿는 선선한 바람이 가을 속으로 이미도 많이 들어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하늘이 참 맑고 푸르다.

 

감사한 일들이 주변에 이렇게 가득한데도 늘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움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성장에 대한 부담감과 강박증이다. 이런 나의 강박관념에 대해서 필립 얀시는 “나는 사람 자체를 염려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고통에 더 노심초사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질문을 하면서 그런 걱정을 타인의 고통을 참지 못하는 ‘소모성 자기번민증세’라고 했다.

 

즉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사람은 교회, 공동체, 나라 아니 우주 전체의 운명이 헌신적인 사역자 한 사람의 어깨에 달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박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사역이란 때때로 그의 말대로 어떤 초연함을 요구한다.

 

작가 부흐너는 이 초연함에 대해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네 몸을 네 이웃과 같이 사랑하라는 뜻과 통한다”고 했다. 타인을 돌볼 수 있도록 너 자신을 돌보라, 남을 돕겠다고 피를 흘리되 죽을 정도로 흘리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립 얀시는 타인을 위하겠다는 불건전한 자기희생증후군, 사람자체보다는 그 사람의 고통을 더 짊어지겠다는 태도를 ‘구세주 강박증’이라고 했다. 그는 또 “예수님도 정녕 인간 자유에 대한 놀라운 존중심을 보여주었는데 그 분은 결코 당신 생애에 온 세상을 회개시키겠다고 나서지 않으셨고 준비 안 된 사람들까지 모두 책임지겠다고 마음먹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교회가 어느 한 편에 치우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모든 문제에 답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세주강박증이라고 부르는 태도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미도 초탈해계시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그 위기를 극복하셨는데 당신 혼자 그 무거운 짐을 가지고 가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으셨다. 당신을 이 땅에 보내주신 분은 아버지였으므로 그 짐 또한 아버지께 돌렸다. 그리하여 그분의 기도는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였다.

이 기도는 단순히 내 뜻을 접고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닌 것에 복종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은 진리를 외치셨다.

 

지상교회는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로 구성되었기에, 때때로 사명에 좌절하고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모험이다. 완벽을 기대하고 교회에 들어가는 자는 이 모험의 본질도, 인간조건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에 합하도록 수종드는 것만이 필요하다.

 

교회는 예수님이 혼자 자신을 지시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역자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아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신비에 교회를 맡겨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 교회는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혼자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번민하는 사역자나 독자가 있다면 이번 기회로 구세주강박증을 내려놓자. 우리 주님도 내려놓으셨기 때문이다.

   

늘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외형적인 교회성장의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진리 안에서의 자율과 책임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자유와 거룩, 기쁨으로 감당하는 사역자들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