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신앙을 찾아서<4>
교회의 신앙고백
김병혁 목사_에드먼톤 갈보리 장로교회 협력목사
내리막길 논쟁
지금으로부터 백 십여 년 전, 영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한
가지 논쟁이 있었습니다. 일명 ‘내리막길 논쟁(The Down-Grade
Controversy)’이라고 불리는 이 논쟁은 당시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
통 복음주의 설교가중 한 사람인 챨스 스펄젼(Charles H. Speurgeon)이 직
접 발간한 ‘검과 흙손’(The Sword and the Trowel)이라는 신앙 월간지에
그의 절친한 동료이자 경건한 목사였던 로버트 쉰들러(Robert Shindler)가
‘내리막길’이라는 제하의 일련의 글들을 게재하게 된데서 유래한 이름입니
다.
쉰들러는 청교도 시대부터 자신의 시대까지 복음주의의 상황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면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참된 신앙의 부흥의 역사
가 있은 다음에는 반드시 신앙의 배도 현상이 대대적 혹은 암묵적으로 나타
나게 되는데, 그러한 부정적인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정통 교리에 대한 무관
심과 체념, 즉 건전한 역사적 신앙 고백으로부터의 이탈 현상이 가속화되어
지더라는 것입니다.
당시 정통 교리에 대한 영국 교회의 냉담한 반응은 쉰들러가 속한 침례교단
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쉰들러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던 것은 세속주의
와 자유주의 사상에 영합한 교리 해체 작업이 스스로를 칼빈주의자라고 자처
하는 장로교인들에게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첫 번째 기고문에서 “장로교인들이 맨 먼저 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
다”고 술회한 뒤, “그들은 가장 고상하고 가치 있는 진리의 길을 버리고
가장 세속적인 지혜의 길을 택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쉰들러와 스펄젼은
침례교 목사였음에도 순수한 칼빈주의 신앙을 추구하였으며, 이 신앙이 유지
되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서 전통적인 신앙고백(교리)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런데 교회 안에 새로운 시대 사조의 유입과 함께 아르미니우스주의와 같은
불건전한 신앙의 출현은 참된 신앙이 질적으로 쇠퇴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쉰들러는 이러한 모습 속에서 마치 세상의 ‘내리막길’로 치닫는 한 시대
교
회의 암울한 그림자를 보았던 것입니다.
위기의 기로(岐路)에 선 기독교 신앙
그럼, 그로부터 백년이 조금 지난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스펄젼과
쉰들러가 지적했던 물음들로부터 자유롭습니까? 안타깝게도 역사는 되풀이되
고 있고, 오늘날 교회의 형편은 그 시대보다 더욱 참담해져가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정통 교회의 적(敵)들은 그 이후로 더욱 세련되고 교묘한 논리와
기세로 교회 안방까지 들어와서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반면, 오늘
의 교회는 그 시대의 교회보다 진리에 대해 담대하리만큼(?) 둔감하여, 그
시대보다 훨씬 경사 깊은 비탈길을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내달리고 있습
니다.
새롭게 고안된 세상의 지식과 경험들이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
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가 하면, 숱한 세속적 프로그램들이 외형적 교회
성장을 구실 삼아 무분별하게 유입되고, 신비 체험과 초자연적 은사가 진정
한 기독교적 능력과 권능인양 행세하고, 인간의 심리적 안정과 위로를 목적
으로 하는 설교와 성경공부 그리고 찬양집회가 내적 치유라는 미명 하에 봇
물 터지듯 넘쳐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세상의 경영 기법을 교회에 적용하여
주식회사 키우듯 성장하는 교회와 주가 높은 기업의 최고 경영자(CEO)를 흉
내내는 목회자가 현대 교회의 모델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젖어있는 교회와 성도는 모를 일이지만, 오늘날 이
시대가 처한 교회의 영적 형편은 적어도 스펄젼과 쉰들러를 비롯하여 종교개
혁의 바른 정신을 통해 이 땅에 참된 영적 부흥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면서
진리의 편에 섰던 성도들에게는 여간 낯설고 부담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
습니다. 특히 입으로는 개혁주의와 칼빈주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세상에 대해
서는 너무나 관용적이고 무감각적인 한편, 정통 교회의 역사적인 신앙 고백
에 대해서는 한없이 냉정하고 무지한 이 시대의 장로교회들의 모습은 그 자
체로 넌센스(NON-SENSE)입니다.
끝나지 않은 논쟁과 역사가 남긴 교훈
‘내리막길 논쟁’은 끝났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
론하고 세상은 교회를 향하여 신앙을 완전히 포기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세
상 사람들은 더 이상 기독교 전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것들
로 교회에 유익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과 교회가 하나되어 갈 수 있
는 좋은 길을 강구해 보자고 정중하게 제안합니다. 교회와 함께 끝까지 ‘내
리막길’에 동행해주겠노라고 여유와 배려를 부립니다.
대신 때묻고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것들(신앙고백과 교리)을 포기하라고 충고
합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배타적이고 수구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그 어
떤 정통 교회나 참된 신앙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말라고 속삭여 댑니다. 교회
에 대한 세상의 끝없는 구애(?)는 스펄젼의 시대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나타
나고 있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이 과거에는 심각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진 반면 지금은 논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매우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에라도
우리가 처해 있는 이토록 열악한 교회 형편을 심각하게 돌아보지 않는다면,
백여 년 전에 영국 교회가 걸었던 것보다 훨씬 가파르고 위험한 ‘내리막
길’을 치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21세기의 교회 역사 속에서, 여전히 종
교개혁의 후예로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당면한 도전인 동시에
격조 높
고 기품 있는 정통 장로교회의 신앙 고백(교리)을 이 시대에 제대로 회복해
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