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딤전 3:3)
세속과의 구별 위해 ‘금주’해야
예수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만나면 어김없이 화제로 떠오르는 것
은 성경에 술을 먹지 말라는 말이 정말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언젠가
남성도들 몇 명이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이 문제로 언성을 높이며 대판 싸우
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은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이 성경에 있다며 열변을
토했고, 한 사람은 그런 말을 성경에서 본 적이 없다며 핏대를 올렸다.
다른 한 사람은 술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그저 취하지 말라는 정도의 완곡한
것으로서 먹어라 아니면 먹지 말라로 딱 잘라 말하고 있지는 않다는 논리를
폈다. 결국 그들은 얼굴에 홍조를 띌 만큼 서로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말다툼
을 하다가 저만치 멀찍이 앉아서 귓등으로 그 언쟁에 참여하던 나에게 달려와
서 정확한 판결을 요구했다.
사실 성경은 술에 대하여 부정과 긍정의 양면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성경이
술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고 있다
는 것은 술에 대한 첫째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노아의 포도주(창세기)와 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음
녀의 포도주(계시록)로부터 쉽게 알 수 있다. 노아는 술로 말미암아 자녀들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고, 음녀는 술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미혹한다.
술은 방탕과 타락으로 가는 길이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
이와 달리 성경은 술을 희락과 교제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
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포도주를 제공한 것이나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
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신 것은 성경이 술과 관련하여 긍정
적인 측면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멜기세덱은 술을 가지고
와서 아브라함의 승전을 축하했고, 예수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혼인잔
치의 즐거움을 회복시켜주셨다.
술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첫째 편지만 읽어보
아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인 감독에게 술을 즐
기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헬라어의 의미를 따라서 정확하
게 말하자면 사도 바울의 생각은 감독이 포도주 곁에
는 가까이 접근도 하지
말거나 포도주를 곁에 두는 일조차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집사에
게 주는 권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딤전 3:8).
그런데 정말로 아이러니컬한 것은 같은 서신에서 사도 바울이 이미 교회의 지
도자로 일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마실 것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다
는 것이다(딤전 5:23).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알고
는 포도주를 조금씩 사용하라고 일러주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술에 대하
여 칼로 두부를 자르는 것과 같은 흑백논리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자유로운 견해 가진 바울
어쨌든 성경이 술에 대하여 곱지 않는 시선을 보내는 것은 술이 대체적으로
유용한 결과를 내기보다는 무익한 더 나아가서는 해로운 결과를 자아내기 때
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영적인 지도자가 될 사람에게는 언제나 술에 대하여
엄중한 금지의 명령을 내렸다. 예를 들면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서 임무를 수행할 때 절대로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면 안되었다(레 10:9).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선택받
은 나실인에게도 똑
같이 요구되는 사항이었다(민 6:1-4). 이 때문에 삼손이나 사무엘 같은 인물
들은 술을 마셔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
는 세례자 요한이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이와 같은 맥
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눅 1:15). 이렇게 성경이 하나님의 일을 맡는 사람들
에게 술을 금하고 있는 공통적인 이유는 세속과의 구별을 위한 것이다.
술이 희락과 교제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연약한 인
생들을 방탕과 타락으로 유혹하는 힘을 더 강하게 발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술 마시는 것을 멀리해야 한다면 신자들이 그러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앙의 지도자들이, 그리고 예수를 믿는 신자
들이 세상과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길 중에 하나는 바로
술을 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