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배경(4)
정승원(합신 조직신학 교수)
지난호에 지적한 바와 같이 헤겔의 철학에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바로
절대적 ‘관념’ (Idea), 혹은 절대적 ‘정신'(Geist)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한 절대성(the Absolute)이 있
는지 없는지를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초월적 절대성이 어떤 윤리
적 당위성으로 (칸트의 경우처럼) 표현되든지, 그 절대성이 역사의 사건
에서 구체화 (헤겔의 경우처럼) 되든지, 또 어떤 다른 경우든지 그 절대
성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가 믿는 신앙과 헤겔의 절대적
정신은 형식적으로는 비슷하다. 우리에게는 절대적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의 절대성이 그의 계시로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다. 반면
에 헤겔은 그 절대성이 역사속에 (인간 思考도 포함하여) 나타남으로 우
리는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우리 기독교 지식 체계와 헤겔 철학
의 지식 체계를 비교해보면 비슷한 것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둘 다
n절대성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지식 체계가 더 믿을 만 하고
어느 것이 더 초월적인가? 인간의 사고 체계와 상응되어야 하는 헤겔의
절대성인가? 아니면 인격적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시인가? 당연
히 기독교 지식 체계인 것이다.)
우리에게 분명히 절대적 지식이 주어졌다는 확신을 헤겔은 다음과 같
이 설명한다. 만약 우리에게 절대적 지식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둘 중에 하나라고 한다, 첫째, 우리는 전혀 어떤 지식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한다. 왜냐면 ‘전
혀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라는 사실도 지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
째로, 절대적 지식이 아니라면 우리는 부분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다. 그러나 부분적 지식이란 바로 절대적 지식과 비교해서 부분적이 된다
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지식은 이러나 저러나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헤겔은 절대적 정신의 실재(reality)는 동적(動
的)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주장하기를, 우리가 지식을 얻는 것도 이
러한 동적 실
재와 상응하는 비판적 과정을 통하여 얻는다고 한다. 이러한
동적인 지식 과정을 변증법적(dialectical)이라 한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현재 믿음들을 가지고 시작하고, 그 다음 그 믿음들을 부정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가진 지식이나 믿음의 가치
도 발견하고 그 부정으로 통하여 얻은 지식의 가치를 또한 발견하게 된
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증법적 과정을 통하여 좀 더 구체적이고 좀 더 완
전한 지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헤겔의 정(正)
반(反) 합(合)의 원리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그 절대적 정신은 자창
적(self-creative)이라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믿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스
스로 존재하시고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처럼 헤겔은 그 절대적 정신
을 그렇게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헤겔의 철학의 모습을 우리는 여러 현대신학 구석 구석에 발
견할 수 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는 헤겔의 이러한 절대적 정신의 개념은 구
세주와 같은 것이다. 인격적인 하나님과 그의 계시를 믿지 않고서도
어떤
구체적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전통적인 기독교 진리
를 달리 해석할 길이 열렸다고 좋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헤겔
의 철학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면상 세가지 문
제를 지적해 보겠다. 먼저 헤겔은 진리 체계란 총체적이라 주장하지만 우
리는 그 진리 체계가 총체적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왜냐면 우리는 진
리를 전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진리 체계가 총체적이다’ 라고 합
리적으로 전제는 했지만 그것을 알 길은 없는 것이다. 알 길이 없는 것을
전제하는 것은 사실 일종의 신념 내지는 믿음인 것이다. 헤겔은 자신의
신념을 우리보고 믿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믿지 말고
‘관념 철학敎’ 교주 헤겔 자신의 말을 믿으라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헤겔은 자신의 절대 정신을 하나님처럼 정의하여 우
리 인간과 차별화시킨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그 절대 정신이 인간과 통
합된다고 말한다. 즉, 역사 속에서 자기 실현화 된다고 한다. 이것은 세상
과 헤겔의 하나님(절대 정신)은 서로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세상
(역사) 없이
는 그 하나님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 것이며 그 하
나님은 세상 없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하
나님(절대 정신)이 없다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사실 헤겔
자신의 이성의 자율성을 절대화하려는 몸부림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
다. 자기 만든 지식 체계, 지식 방법, 사고 구조 속에 모든 것이 (그 절대
정신까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헤겔 철학은 소설과
같은 허구가 아니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헤겔은 마치 자신의 철학은 칸트 철학과는 달리 구체적이
라 주장하지만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그의 절대적 정신은 칸트의 본
체론적 세계와 별 다를 바가 없다. 또한 비록 역사 속에 나타나는 사건을
빌미로 구체성을 주장하지만 그 역사의 사건이 정말 그가 말하는 절대적
정신의 표출인지, 우연인지, 성삼위 하나님의 섭리인지 (우리가 믿는 바
와 같이) 어떻게 알 수 있다 말인가? 그러한 역사적 사건은 사실 구체적
이라기 보다는 단지 우리 머리 속에 그려지는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문제 많은 헤겔 철학이 좋다고 좇아 다닌 사람과 신학으
로 우리는 스트라우스 (D. F. Strauss), 바우어 (F. C. Bauer), 포이에르
바하 (L. Feuerbach), 키에르케고르 (S. Kierkegaard), 막스 (K. Marx),
틸리히 (P. Tillich), 세속신학, 희망의 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 과정신학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