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의 북카페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단절시키는 교육, 연결하는 교육
조주석 목사_합신출판부편집실장
파커 팔머|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IVP, 261쪽, 2006년
‘경쟁력’이라는 말은 흔히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단어다. 이 말은 경쟁에
서 이기지 못하면, 경쟁에서 이겨낼 힘이 없으면 상대에게 밀려날 수도 있다
는 두려움이 내포된 섬뜩한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상대를 모두 잠재적 경쟁
자로 간주하고 있다.
경쟁력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
이런 현실에서는 교육도 이제 ‘경쟁력’을 키워내는 데 올인하고 있다. 경
쟁은 이제 교육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전 영역에서 절대적인
규범으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왜 이런 관점이 교육에 들어온 것인가. 그것은 지성 사회가 교육에서 영적
차원을 철저히 외면한 결과라고 한다. 인식 주체가 인식 대상을 객관화하고
그것을 분석하고 조작할 수 있는 인식론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란다.
이러한 관점에 서있는 현대 교육은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도 지식이 발생하는 인간 조건의 중심부에 깔려 있는 영적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지식이 인간 영혼 내부의 열정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정작 지식은 호기심이나 지배욕에서 나오는데도 말이다.
이런 시각은 교육이 잘못된 인식론에 서 있다는 증거다. 이제까지 교육학에
서 주류를 이루어 온 인식 이론은 ‘객관주의’다. 그것은 세계를 분석과 조
작의 대상으로 보는 앎의 방식이다. 세계에 대한 지배를 목적으로 삼는 앎
의 방식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이러한 교육을 받아왔고 거기에 흠뻑 젖은 채 그런 방식으
로 지식을 습득하려 한다. 책을 객관화시켜 분석하고 종합하여 지식을 얻으
려 하는 독서 태도도 그런 한 예이다. 책 자체(저자)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을 허용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에는 연결이 아닌 단절만 있을 뿐이다.
우리의 교육은 학생에게 인간이든 사물이든 자연이든 문화 현상이든 간에 그
것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여기게 할 뿐 그것들이 나에게 말하는 것
을 용납하
려 들지 않는다. 이러하니 학생과 학습 대상 사이에 진정한 관계가 형성될
수 없고, ‘저쪽 바깥’ 세계를 멀찍이 관람하는 자들로 찍어 낼 뿐이다.
저자는 여기에 현실 교육의 근본적 실패가 들어 있다고 꼬집는다. 왜냐하면
주체와 객체를 서로 연결해 주는 사랑에서 나오는 지식이라야 그것이 정복
과 착취와 파괴라는 두려운 결과를 산출해 내지 않기 때문이란다.
지식이 사랑에서 나오면 자신과 세계, 나와 타자, 주체와 객체가 서로 포용
하고 화해할 수 있다. 교육에서 이런 공간을 창조해 내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한결같이 주장하는 교육의 원리요 핵심이다. 그 구체적 실천 방법들
은 5,6장에서 아주 자세히 제시된다.
이렇게 인식과 교육과 실천에서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을 펴는 저자의 태도
에는 사활이 걸린 어떤 근본적 대전제가 깔려 있다. 그것은 실재의 핵심이
‘공동체의 관계들’이라는 사실이다. 이 전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게서 발
견된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는 통일체로 존재하시되 사랑의 관계 속에서 역
사하신다.
이 삼위는 우리의 교육 현실처럼 서로 죽자 사자 싸우는 관계로는 결코 존재
하
시지 않는다. 삼위일체는 단지 존재하는 방식만이 아닌 사랑의 관계 속에
서 창조와 섭리와 구원 사역이라는 경륜을 이뤄 가시는 상호 의존적이며 상
호 침투적인 존재라는 표현이다.
토머스 머튼은 이를 은유적으로 ‘숨어 있는 온전성’이라 표현했고, 조직신
학에서는 ‘페리코레시스’라고 한다. 팔머의 교육학에는 이러한 기독교 실
재론, 존재론이 깊숙이 깔려 있다. 그런 까닭에 주체와 대상을 단절시키는
객관주의나 오직 자신의 말만 듣겠다는 독단에 빠지는 주관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학, 신학, 철학, 사회학, 과학 전반에 걸쳐 단절이 아닌 연결이 공동체
의 핵심이라는 지적인 반성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교육 현장에서는 그
런 반성이나 실천이 거의 없어서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이제 우리는 무엇과
맞서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상호 의존 관계 중요성 살려야
나의 이익과 힘을 얻기 위해 자연과 사회와 인간의 마음까지 지배하고 조작
하려고 하는 경제 제도의 노예로 전락한 교육 방식을 폐기하고 단절이 아닌
연결을 이루어내는 배움의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교육관을 이참에 확실
히 들
여놓자. 교육은 관계망에서 이루어진다는 저자의 확신이야말로 정말 빼어나
며 소중하게 보인다.
chochuseo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