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독서 생활
< 안만길 목사 · 염광교회 >
“얕은 물가에서 노는 사람은 심해의 아름다움 알 수 없어”
목회자와 독서생활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목회사역의 중요한 몫이 설교사역이기 때문이다. 설교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설교가 어떤 공식에 의해서 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공식에 대입만 하면 설교가 뚝딱 나온다면 설교자의 수고를 훨씬 덜어 줄 것이다. 그러나 은혜로운 설교는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어 있는가가 관건이다. 그 수고에는 목회자의 풍부한 독서가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풍부한 물을 저장하고 있는 저수지에서 가물 때에 필요한 용수를 확보할 수 있듯이 말이다.
목회자의 독서는 이처럼 뚜렷한 방향성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풍부하게 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독서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그 시대의 정신세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많은 사람들 또한 성도들의 마음까지도 침투하여 우리의 가치관을 흔들기 때문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기독교서적의 수준은 중학생이 읽을 만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깊이를 잘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하고 난해한 신학적인 책은 기피하는 경향이 심한 것 같다. 간증 위주의 가볍고 성공 일화를 다루는 번영신학의 책들이 잘 팔리는 것을 보면 신앙의 깊이가 얼마나 얕은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때에 목회자의 독서는 좀 더 깊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개혁주의 입장에서 나오는 책들을 많이 읽어야 할 것이다. 가벼운 책들은 멀리하고 씹기 어려운 가죽 같은 책을 접하는 것이 목회자의 신학의 깊이를 더해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얕은 물가에서 참방거리는 사람이 심해의 아름다움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마틴 로이드 죤스 목사의 독서 생활을 보면 그는 휴가 때에 두툼한 신학책을 늘 곁에 두고 읽었다고 한다. 그는 ‘책을 잘 씹고 소화해야 나의 일부가 된다. 그러면 나는 자극을 받는다. 그래서 나오는 것은 내가 읽은 독서의 진액들이다. 하지만 이 진액은 나의 사고의 결정이다’라고 말하였다.
요즘 보면 젊은 칼빈주의자들의 책들이 많이 번역되어 나오고 있어 환영하는 바이다. 고전과 현대적인 연구의 서적들을 함께 읽으면 더욱 유익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늘 곁에 두고 눈에 익숙할 정도로 읽는다면 우리의 설교가 더없이 깊어 질 것이며 바른 설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 장정일은 이렇게 자기의 독서관을 말하였다 : “내가 보기에 바른 독서란 이인삼각(二人三脚) 경기와 같다. 독서는 저자가 그 책을 쓰기 위해 펜을 내어 달렸던 그 열정의 속도와 같은 속도로 읽어 내려가야 한다. 폭풍처럼 읽어야 한다. 어떤 책을 들고 3일 이상 뭉그적거리면 그 책은 당신 손에서 죽은 거라고 보아야 한다.” ‘피로 쓰여진 책은 게으른 독자를 거부한다’라는 니체의 생각에 나는 동감한다.
목회자의 손에는 늘 책이 들려져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책 읽을 시간이 그렇게 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에 갈 일 있을 때 그 나라의 문화나 선교의 역사 같은 책을 읽으면 그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북경에서 온 편지’(펄벅)를 읽었을 때 중국의 격동기의 역사와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시간나면 책을 읽겠다고 한다면 평생 읽기 어려울 것이다. 목표를 정하여 일 년에 어느 만큼의 책을 읽겠다고 하면 더 많은 책을 더 열심히 읽을 수 있는 자극이 될 것이다. 또한 읽은 책을 잘 정리할 필요가 있다. 노트나 컴퓨터에 간단하게 읽은 소감을 적으며 또한 인상적인 구절을 적어 놓으면 그것만 읽어도 그 책에 대한 기억이 피어날 것이다.
깊은 독서 생활을 통해서 목회자의 신학이 깊고 성숙해 지며 또한 그 폭이 넓어진다면 그 강단 역시 풍부하게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목회자는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존 맥아더의 설교론에 보면 훌륭한 설교는 수고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빈약한 설교의 근본적인 이유는 준비에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기 때문임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독서는 당장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의 정신에 그 내용이 들어가서 그것이 녹아 나올 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독서의 담수율을 높여야 할 것이다.
반면에 목사가 너무 책만 읽어도 안 될 것이다. 그저 책상에만 붙어 있다면 목양은 언제 할 것인가? 한 손에 책을 들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목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