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 허태성 목사, 강변교회 >
“목회자로 온전히 충성 못할 바에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언제부턴가 교계 관련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이 두려워졌다. 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추하고 악한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기독교를 음해하려고 악랄한 누군가가 꾸며낸 거짓 기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게다가 이것이 목회자들만 알 수 있는 제한된 정보로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기독교인들은 물론이고 세상의 비기독교인들에게까지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수치와 폐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있으며, 얼마나 전도의 문이 막히고 있으며, 안티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모욕할 수 있는 빌미를 주었던가?
며칠 전에도 한 일간지에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해 입건된 사람 가운데 현직 목사가 끼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십자가의 복음을 위한 고난은 고사하고 사상범이나 양심수도 아닌 잡범으로 한 명당 3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벌려고 그런 짓을 하는 추잡스러운 인간들 속에 목사가 끼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얼마전(2012. 8. 27) 아침에 배달된 조간신문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웃을 수가 있었고 감사할 수가 있었다. 감리교회가 한국 개신교 최초로 교단 차원에서 ‘교회 세습’을 막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가 1면에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그 기사에 의하면 감리교 교회법인 ‘장정’(章程) 개정위원회가 ‘교회 담임자 파송 제한’ 규정을 신설해 ‘부모와 자녀가 연속해서 한 교회를 담임할 수 없다’, ‘부모가 장로로 있는 교회를 그 자녀가 담임할 수 없다’는 취지의 조항을 마련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 규정은 장인, 장모와 사위, 며느리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아, 감리교회가 그래도 아직 살아있구나!’라는 탄성을 지르며 그 개정안이 꼭 통과되기를 기도드렸다.
감리교회보다 훨씬 더 성경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장로교회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을 감리교회가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부끄러운 마음을 느낀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충현교회 김창인 원로목사의 “한국교회와 하나님 앞에 저의 크나큰 잘못을 회개합니다. 충현교회 성도 가슴에 씻기 어려운 아픔과 상처를 주었습니다”라는 참회의 선언에 이은 또 하나의 역사에 감사를 드린다.
신학교를 졸업하는 사역자는 많은데 목양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개척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 년 내에 문을 닫지 않고 생존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다. 잘 알지 못하는 외부인(?)을 담임으로 맞아 어려움을 겪는 교회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담임목사 리더십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각종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아들이나 사위가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목회를 잘 함으로써 계속하여 부흥되는 교회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것을 다 바쳐 일구어 온 교회를 남에게 주고 싶지 않다는 목사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청빙과정에 전혀 하자가 없다면 아들이나 사위를 후임목사 후보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 ‘교회 세습’이라는 용어가 비성경적이기에 쓰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필자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분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필자의 생각이 치우쳐 있다고 비판할 분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고백(고전 9:15)이 필자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이 문제가 이미 과거가 된 분들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미래의 가능성으로 꿈꾸는 분들에겐 차라리 목회를 못할지언정,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래야만 교회가 이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살아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