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독도와 국가의 신용도 역학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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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와 국가의 신용도 역학관계

 

< 김영규 목사·남포교회 협동목사 >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일본의 독도 야욕은 국제 사회에서 신용도에 심각한 문제로 작용하게 될 것”

 

 

최근 국가의 영토, 국권 및 정치사회뿐 아니라 미래 해양 자원과 군사 영역에 이르기까지 인문과학의 연구 활동이 그렇게 중요하게 부각이 되는 때도 없었다고 본다.

 

독도 영유권 문제로 태프트-가쓰라 밀약 혹은 합의 보고서(Taft-Katsura Agreement or agreed memorandum)가 역사의 그림자로부터 다시 부각이 되었고, KBS TV 스페셜 ‘독도의 증언’에서 1902년에 대한제국으로부터 울도 군수 배계주에게 울릉도에 출입하는 모든 화물에 세금을 매기라는 공적 문서인 『울도군 절목』의 발견이나, 독도에서 잡은 강치에 대한 수출세를 울도 군수에게 납부한 증거나, 일본인의 독도 전복 채취와 관련하여 일본의 어업자들이 울릉 도감에게 수출세를 내겠다는 약조문과 함께 도감이 일본인에게서 받은 영수증에 대한 증거를 통해서 1905년 시마네 현으로 독도 편입 이전에 독도의 실효적 지배에 대한 역사적 자료 발견과 그것에 대한 추적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그 당시 열강 나라들의 숨어 있는 깊은 의도에 강탈의지를 보여준 외교문서들은 한 국가의 역사적 흔적으로써 국가 이미지와 신용평가에 있어서 오히려 긴 역사 안목에서 보면 자신의 국가에 큰 손해를 끼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향후 5년 동안 실효성이 있는 1902년 1월 3일의 영일 동맹(The Anglo-Japanese Alliance) 문서의 서문에 외교적으로 다만 극동에 있어서 평화를 유지하고, 중국과 한국의 독립성과 영토권을 유지하며, 이들 나라들에 있어서 모든 국가들의 무역과 산업을 위해 동등한 기회들을 보증하는데 관심을 보인다는 명목 하에 중국의 이권에 대해서 일본은 영국에 간섭하지 않고 한국의 이권에 대해서 영국은 일본에 간섭하지 않으며, 외부 힘의 공격적 행위나 그들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혼란에 의해서 위협받거나 생존권과 이익에 부응하여 상호 개입이 필연적일 때 필연적 수단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호 인정하며, 다른 힘과 상호 전쟁에도 참여하거나 엄밀한 중립을 유지한다는 협약은 지금도 영국과 일본의 얼굴이 되고 있다.

 

1905년 7월 27일 서로의 관심사들에 대해서 교환하고 극동(원문에 extreme 대신 far로 수정한 흔적이 있음)에 있어서 일반적 평화를 유지하는 일에 관한 가쓰라와의 긴 대화 내용을 담고 있는 워싱턴에 보낸 태프트의 보고서의 경우, 가쓰라로부터 필리핀에 대해서 어떤 공격적 의도를 품고 있지 않고, 영국과 일본 및 미국과의 형성되어 있는 어떤 좋은 이해 혹은 동맹의 입장에서 필리핀이 미국과 같은 강하고 친밀한 국가에 의해서 지배되어야 된다는 입장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 대화 내용 중 한국과 관련해서 한국이 노일전쟁의 직접적 원인이며 절대적 중요성의 문제라면서 대외적으로 한국의 독립적 외교권을 확고히 빼앗고자 하는 일본의 야욕이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주변국가와 전쟁을 수행하기까지 도둑적 야욕에 의해서 편입된 독도에 대해서 일본이 아직도 그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 전 땅에 대해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독일 국민들이 과거의 치명적 잘못에 대해서 외형적으로나 깊은 반성을 표명하는 반면, 일본 정부나 일본 국민이 아직도 그런 치명적인 잘못에 대해서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국제질서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아마 국제신용평가에 있어서 일본 정부나 일본 전체 국민에게 세계 질서의 책임이나 깨끗한 세계경제, 평화적 기술이용 및 건전한 문화 예술에 대한 책임을 도저히 맡길 수 없다는 마음을 세계인들에게 다시 심어 준 것은 일본에게 가장 치명적인 해로 나타나고 있는 듯 보인다.

 

최근 자국이익을 중심으로 선행한 특허기준의 변화나 애플 대 삼성의 특허논쟁에 있어서 배심원들의 공정한 판결에 약점을 보인 것도 미국의 국가 신용도에 있어서 장기적으로 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과 비슷하다. 힘은 그 공정성에 더 큰 힘을 얻는다. 한 국가의 시민들의 종교생활이나 사회생활도 그런 공정성과 합리성의 일면들이 잘 드러나고 있는 영역들이다.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나 예정론이나 기독론 및 구원의 방식에 있어서 그런 공정성과 합리성의 최극단을 고백하고 있다. 성도들의 삶의 질은 그런 공정성과 합리성을 표현해 주고 있는 얼굴과 같다.

 

교회가 국가나 그 땅에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은 거기에 한 시민의 일원으로서 사는 성도들의 삶의 질을 통해서 그런 공정성과 합리성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과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만을 남기고 국가까지 다 버리는 일만큼 그런 세상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행위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