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_이재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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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재헌 목사·새과천교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돌아보는 시간 가지길”

어느 때보다도 자아 표현이 분명하고 자존감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싶어 하
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모양으로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자기를 잃
어버리는 위기에 처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기 주장 강한 시대 살고 있어

다양하면서 또 풍요로운 정보들이 그 분량이나 전문성에 거의 제약도 받지 
않고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무한 입력되는 시대적 환경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지식적으로나 이성적인 판단력에서 월등한 수
준을 가지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기 때문일까, 사회 곳곳
에서 자기 주장들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 어찌 사
회만으로 국한 되겠는가? 
교회 안에도 또한 목회자들 속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가장 심
각한 수
준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비단 부끄러운 교단 분열의 
역사를 말하지 않더라도 개 교회가 안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 역시 동일
한 근원적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우리의 모습, 아니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 속에서 주께서 원하시
는 겸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를 진다는 말씀의 의미가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 것인가?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적인 설명보다 가장 우선적인 길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내 속에 있는 어떤 말과 생각을 바깥으로 드러내기 이전에 자신
을 향하여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한 번 더 던져 보는 것이다. 그 질문은 아주 
간단하다. ‘그러나…’라는 질문이다. 
내 생각에서 생겨나는 내 목소리, 내 판단에서 나온 내 주장을 말하기 전에 
먼저 ‘그러나’를 물으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그러
나’를 생각하면 내 머리를 가득 채운 그 모든 것을 가슴으로 다시 묻어 버
릴 수 있다. 
하고 싶은 일들, 가고 싶은 곳도 많이 있을지라도 ‘그러나’를 되물으며 다
시 한 번 머리 숙여 
주를 바라 볼 때에 걸음을 멈추게 된다. 멋진 지도자의 
모습을 그리며 팔을 높이 들고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고 싶을 때에도, 강력
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내 주장을 외치고 싶을 때에도 한 번 더 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내가 걷는 이 길은 육신을 입고 오셨으나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걸어가신 십
자가를 따르는 믿음의 길이기에 ‘그러나’를 외칠 때가 수 없이 많이 필요
함을 본다. 
마음껏 말하고 싶고 마음껏 뛰고 싶을 때에, 내게 있는 능력을 다 동원하여 
가장 멋지고 그럴듯하게 만들고 싶을 때에, 때때로 동조하는 사람들의 박수 
소리도 들리며 후원자들의 강력한 힘들이 느껴지면서 이것이 내 생애를 평가
하는 최고의 업적이 될 것 같은 유혹이 나를 삼킬 때에도 ‘그러나’를 외치
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우리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리하여서 머리로는 아쉽지만 가슴으로 나를 멈출 수 있다면 이 얼마
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 길이 아닌 줄 알면서, 이 방법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러나’를 외칠만
한 용기를 
갖지 못해 머뭇거렸던 지난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때
로는 사방을 감싸고 있는 사람들의 눈길 때문에, 이런 저런 목소리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자존심과 체면들이 오히려 나를 억압하
면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서 조용히 흘러가는 대로 순응하는 것이 지혜로
운 것이며,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유혹 받기도 했다. 이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무난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다
시 한 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서 조용히 돌아본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가 가야하
는 길이 그 길이 아니라면 더구나 목양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기에 비록 힘
이 들고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거나 여기저기서 애매한 소리가 들려올
지라도 ‘그러나’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자의 길, 
아니 성도의 길임을 믿는다. 

하나님 원하시는 길만 찾아가야

이것이 믿음이며 이것이 소망이다. 이 귀하고 소중한 경험은 믿음의 사람들
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