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정치와 세속정치와의 관계
민성기 목사·한주교회
“각자의 자리에서 분수 지키는 것이 아름다워”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세속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인간의 존엄
과 가치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인권)를 보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론에 따른 인간의 존엄과 가치로의 접근보다는 칼빈으로부터 웨
스트민스터 총회 성직자들에 의해서 확인된 것처럼 진정한 인간 존엄과 가치
는 오직 성경으로부터 발견해야 한다.
성경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기준 보여줘
칼빈으로부터 웨스트민스터 총회 성직자들 안에서 확인된 장로교 정치원리
에 따른 교회정치와 세속정치와의 관계는 근원적 해답으로써 진정한 인간 존
엄과 가치에 대한 이념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진정한 존엄과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오직 성경을 통해 발견되기를 원한다면 세속정치가
진정으로 추구하고 지향해야 하고 그 실천에 있어서도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근원적 답일
것이다.
교회정치는 영적인 하늘의 것이고 세속정치는 땅의 것으로 불리며 그 영역
이 있지만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나왔다는 개혁주의의 전통적 견해에
따라 그 지향점은 둘이 아니라 하나여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충만한 지식으
로써 동일한 목적에 부합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 후에 세상에 죄가 필연적으로 들어 올 수밖에 없는 섭리에
따라 세상을 타락한 상태로부터 그대로 방치하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
은총을 통하여 죄를 억제하는 차원의 섭리의 역사를 감행하셨다. 따라서 진
정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확인되는 자리란 그와 같이 일반은총을 따라 세우
신 세상권세의 핵심인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서만 진정한 복의 자리가 있다. 율법의 둘째 조항
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도록 모든 세속정치가 요구 받고 있다. 이
는 구약의 선한 왕들의 예에서 확인되었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죄를 없애
는 방향으로 섬기기 위한 자리여야 한다.
장로교 정치형태는 그 누구에게도 철권을 휘두르는 권세를 주지 않았다. 회
(會) 자체에 열쇠권을 주께서 주셨다면 모든 주권이 오직 주께만 있다. 따라
서 모두가
봉사직이요 섬기는 직무로서 있게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한 왕이시며 머리이시라는 교회 헌법의 총론적 선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성경의 창조론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헤르만 바빙크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인간의 상태는 영화로운 상태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아무리 높
이 올려놓았을지라도 아직은 가장 높지 않다. 아담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
는 상태이었지만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는 부패될 수 없고
죽을 수 없는 영생은 아직 소유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그 존속에 어떤 조건
의 성취에 달려 있었던 과도기적인 불멸성을 받았다.
그는 직접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아직은 이 형상과 그의 모든 영
광을 상실할 수 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아담이 소유했던 모든 풍부한
것 중에 부족한 것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절대적 확실성이다. 우리가 이것
을 소유할 수 없는 한 우리의 안식과 우리의 기쁨은 아직 불완전하다.
절대적 확실성이 낙원에 있는 인간에게 결여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
로 창조됨과 동시에 영원히 변치 않는 선한 것으로 고정되지 않았다.
인간
의 기원도 신적이었고 그의 본성도 신적 본성과 관계되었고 그의 종국도 하
나님의 직접적인 현존 안에 있는 영원한 복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과 그 종국이 그의 영원한 예정과 작정을
넘어 기뻐하시는 뜻에 있기에 세속정치도 오직 그런 뜻을 성경에서 찾고자
했던 웨스트민스터 총회 성직자들에게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과 진정한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그런 인간으로 높일
때까지는 아직 세속정치 안에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다. 왕이나 군주에 의
한 정치이든, 귀족정치이든, 민주정치이든 이런 하나님께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써 자리한다면 어떤 정치 형태가 좋은지에 대
한 논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사람의 욕심과
자랑과 허영과 쾌락을 향하여 질주하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는 세속정치는 실
패할 수밖에 없는 정치라 할 수 있다.
빈부격차가 더욱 과도하게 벌어져 사회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그런 사회에 적
응하지 못해 폐쇄적인 자포자기의 삶을 살며, 정신적 안식을 찾지 못해 향락
과 소비의
쾌락주의로 치닫도록 하는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자유성(방종)의
확대로의 정치는 분명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진정한 가
치를 심기 위한 적정한 선의 자유가 요구된다.
그리스도인의 존재 의미도 바빙크의 말처럼 비범한 무언가를 내세우고 무슨
특별한 일, 보통이 넘는 일, 초자연적인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자의 자리에서 가정적인 것, 분수를 지키는 것, 절약과 근면, 신뢰, 정직,
질서, 친절 등처럼 사소한 일에서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인간의 가치가 무엇
인지를 알아가는 것에 있다. 그래서 자신을 넘어 사회와 국가와 세계의 영역
에 하나님의 부요하신 은혜와 그 속성에까지 이르는 높은 가치를 심는 일에
그 존재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은 마치 그리스도인만이 창세기 1장 28절을 특별히 문화명령으로
보고 실행하는 그런 종말론적이고 폐쇄적인 문화관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으
로서 영원한 도덕적 실정법(Moralis-positiva lex)에 따른 중생된 그리스도
인들의 적극적 문화관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에 이르는 것이 그 목적
이것은 대사회나 국가에 도덕성이나 정직성과
같은 덕목들을 요구하고 실천
하도록 요구하는 본보기가 되게 하는 근원적 원리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