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만으로 만족하는 개혁주의 신앙
< 문민규 목사, 반석교회 >
“정암의 ‘개혁’ 이해에 걸맞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많이 나와야”
영음사에서 발행한 “박윤선과의 만남” 1, 2권을 읽고 느낀 것은 박윤선 박사는 진정한 개혁주의 신앙을 추구한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 생각된 것은 박윤선 박사의 그 개혁주의 신앙을 목회에 적용한 교회지도자는 의외로 적다는 것이다.
많은 교회지도자들은 박윤선 박사를 존경한다. 박윤선 박사와 인연이 있는 교회지도자들은 박윤선 박사의 신학과 신앙은 목회자로서, 교수로서 본이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이 책에서 증언한다.
그럼에도 소위 교세가 큰 교회치고 박윤선 박사의 개혁주의 신학을 따르는 교회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윤선 박사 교수직의 근간이 되는 개혁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신학자와 목회자도 적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교회지도자들이 개혁주의 신학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안다’라는 말을 우리는 알고 있다. ‘체험했다’ 그러니 그렇게 체험한 대로 살고 있다가 ‘안다’는 것”이다.
여러 신학자가 박윤선을 말하고 그 분의 신학과 설교를 말하지만 박윤선의 무늬만 그리고 있다. 그러니 개혁주의를 말하면서도 개혁주의 신학이 삶에 배어 있지 않은 교수직, 목회직은 한마디로 개혁주의 신학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서 어떻게 박윤선의 후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라도 진정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배출이 되고 개혁주의 신학으로 무장한 교회들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박윤선 박사와 만남”의 책을 읽고 느낀 다른 하나는 박윤선 박사는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해하는 신앙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다들 알고 있다는 내용을 말해 보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그 분만이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이시다. 성경이 다 그렇게 말씀하지만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로고스, 생명, 참빛, 성육신 등등.
그리고 이 말씀은 누가 알 수 있는가? 구원 받은 자이다. 구원 받은 자가 요한복음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을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새로워지기에 믿음이 자란다. 그러니 바울과 같이,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박윤선과 같이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해하는 신앙으로 살게 된다.
개혁주의신앙에 대해 마키다 요시카즈(개혁파 신앙이란 무엇인가?)의 말을 인용하면, 개혁주의 신앙이란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살아가는 신앙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철저하게 중시하는 신앙이다.
또한 순수한 교리를 철저하게 추구하는 신앙이다.
그것은 신조를 중요시하고, 예배를 성도의 삶에 우선시하고, 선행을 강조하고, 장로주의 정치를 확립하고, 교회의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선한 싸움을 마다 않고, 이런 모든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인 줄 믿고 인내로 이루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렇지 않은 상대방을 설득하고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길 오래 참음으로 기다리는 신앙이다.
박윤선 박사의 삶을 보면서 느낀 또 하나는 개혁주의 신앙을 이 땅에 세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분이고 그의 개혁주의 신학을 드러내는 방법은 급진적인 방법은 피하고 꾸준히 인내하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박윤선 박사는 ‘개혁’이라는 말을 즐겨 자주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후학들은 이것을 진정한 개혁주의 신앙을 드러내기 위해 ‘개혁’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당시 합동 측의 정치적 횡포에서 벗어나서 덜 정치적인 교단과 신학교를 세우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래에 교계에서 개혁주의 신앙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박윤선 박사의 개혁주의 신앙은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신앙”이었음을 우리는 결코 관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교단과 합동신학대학원은 진정한 개혁주의 신앙으로 반듯하게 일어서서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신앙을 일깨우고, 이것이 우리 모두의 신앙으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