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앙으로 교회 세우기
< 가정호 목사, 세대로교회, 부산노회장 >
전도하기 어려운 시대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맞는 말 같다. 새 신자가 잘 오지 않는 시대이니까!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대체로 그런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숫자적으로 부흥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전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며 더 공격적이고 열정적인 전도운동을 부르짖는 그룹들이 늘어가고 있다. 우리가 배운 신학과 관계없이 소위 “되고의 법칙”이 언제나 우세하다.
한국교회의 일정한 그룹에 들어 있는 이들에게는 말발이 통하는 교회 싸이즈가 있다. 몇 명 모이느냐를 가지고 신학의 옳음을 가늠하려는 유혹이 있다. 일면 간단하고 손쉬운 평가기준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두고 볼일이다.
한해 두해 세월이 가면서 자괴감이 기어들어와 사는 것이 우울하다. 그러면 이젠 거의 죽음이다. 그럴 일이 절대 아니다. 부러우면 지고, 두려우면 숨는다. 기죽을 일이 아니다. 내가 배운 개혁신학과 거기서 비롯되는 바른신앙으로 교회를 세워낸 선배들의 모범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반복해서 배운 신학을 재검토하고 다시 더 깊이 연구하다 보면 신이난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만 해도 그렇다. 한 주씩 진행되는 하이델베르그 연구는 신앙하는 즐거움을 준다. 거기 신앙함과 신앙실천의 원리가 다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 해도 그렇다. 반복해서 자꾸 자꾸 읽다보면 거기서 모든 것이 다 나온다. 회심을 경험하게 되면, 나의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고 운명이 바뀐다.
성경을 연구하다 보면 부흥의 원리도, 자라남의 공식도 거기 다 있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바로 서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가. 회개하고 자기 자신이 변화되는 일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내 가정을 말씀으로 바로 세우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니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고 자기를 통해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일하신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내가 바뀌니까 우선 내가 좋다. 내가 행복하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니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목회자의 가정이 행복하니 성도들도 행복하다. 우선 가장 가까운 동역자의 가정이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옳음과 바름도 전염된다. 마음 맞는 사역자들이 어우러져 동역하는 기쁨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까? 같이 주님 모시고 하나님 나라 섬기는 삶이 즐거운데 이보다 더한 감사가 있을까. 교회 부흥은 때가 되면 안 될 수가 없다는 것이 살면서 경험하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부흥이 안 된다면 그것이 기적이다. 그것이 오히려 찾기 드문 현상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열정이 불타오르면 자칫 자신이 불타버리기 쉽다. 무릇 모든 일, 범사에 감사하고 사는 일, 항상 기뻐하며 사는 일, 쉬지 말고 기도하는 일이 개혁의 제1순위이다. 이게 안 되면 다른 모든 것은 안 된다.
세상은 우울증에 걸려 있다. 사회적 우울, 집단 우울, 시대적 우울증에 걸려 있다. 자본주의 말기증상이 여기저기에 너무나 현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워한다. 돈을 써도 행복하지 않다.
100년 전 임금님 수랏상보다 잘 먹고 잘 사는데도 기쁘지 않다. 크루즈를 타고 만국을 여행해도 만족이 없다. 그러다보니 각종 중독이 판을 친다. 무엇보다 퇴폐적인 일들에 빠져든다. 경마, 오락, 빠찡고, 로또, 섹스산업이 번창한다. 그래도 만족이 없다.
세대를 초월한 자살이 급증한다. 동반자살 사이트가 운영된다. 결혼하지 않는다. 자식도 낳지 않는다. 동성끼리 혼인한단다. 그게 취향이란다. 웃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을 취향이란다. 가정들이 여기저기서 붕괴되고 있다. 앞 다투어 이혼한다.
사람들은 목이 탄다. 옳음과 바름을 찾아 갈급해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교회가 뭔지 모른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체된 성도의 길을 가본 일이 없다. 바른 목사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거룩한 쾌락을 경험해 본 일이 없다.
그런데 이것이 기회이다. 제대로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달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이런 시대라서 개혁신학은 놀라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고 순결한 복음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들, 남은자들, 택자들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고 있다. 옳음과 바름을 찾기 위하여 삼지 사방으로 헤매고 있다. 그래서 바른 신앙과 바른 신학과 바른 생활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