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농어촌부를 고민하면서
< 한철형 목사, 산성교회, 총회농어촌부장 >
“교단사역 활성화 위한 상비부역량 결집하길”
유난히 추운 날씨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들 건강에 유의하셔야 하겠습니다. 농어촌부장을 연속으로 맡으면서 사모세미나를 앞두고 감회와 의견을 몇자 적어봅니다.
우리 교단은 금년에 설립 30주년을 맞이하는 때입니다. 전국목회자사모세미나가 횟수를 거듭하여 이번으로 18회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사모세미나에 열심히 참석하시고 기품 있게 시간, 시간 진행에 참여하시며 또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감도 가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총회농어촌부의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회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정책적인 면을 몇 마디 하려 합니다.
총회의 정책위원회의 활성화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일례로 농어촌부의 사모세미나나 지도부의 중고등부 연합수련회는 우리 교단이 아직 미숙할 때에 그래도 연합성을 이루기 위하여 시작된 사업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당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업은 규모가 커지고 잘 정착되었는데 그 그릇이 준비되지 못하고 계속하여서 같은 일만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비부는 이제 상비부의 본연의 일로 한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행사는 산하 기구를 통하여서 일구어 나가도록 틀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리매김은 상비부 자체가 하지 못하고 정책위원회에서 중장기적으로 정리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 상비부 업무의 분할을 재고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조직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인재풀을 위하여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국가적으로도 문제입니다만 고령화는 교계에서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교단에서는 이 문제가 문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단 사역의 활성화를 위한 큰 변화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어촌부를 국한하여서 보면 작금에 도시와 농촌의 이원화가 된 것을 봅니다. 과거에는 농어촌교회를 통하여 도시 목회자가 충원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농어촌교회에서 목회하는 담임목사의 당해 교회에서의 경력이 평균 10년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고착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특별한 외적 변화(교회성장)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결국은 개 교회의 고립으로 이어집니다. 농어촌에서의 10년, 20년 목회에 외형적인 성장 없이 지내고 나면 그 내적 상처가 어떨까 쉽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중견목회자가 된 다음에는 같은 동역자라도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때에 ‘증경총회장단’이 아니라 ‘은퇴목사회’가 구성되어서 교단 산하 지방의 교회들을 순회하며 기도회 또는 지역전도단으로 섬길 수 있다면 신바람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대접받는 원로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알아주고 목회 노하우를 가진 전도자로서 지역 전도에 함께 한다면 대단한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더 욕심을 낸다면 인재풀에 성도들과의 연계성입니다. 몇몇 교회들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예배당에 비가 새고 수리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가장 마음이 아픈 소식이기도 합니다. 농어촌부로서는 재정적인 여력이 없으므로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농어촌교회에 청년 몇 명이 있어서 마음먹으면 바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할텐데 시작을 못합니다. 재정적인 면보다는 그 작은 동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도 헤비타트운동(사랑의 집짓기 운동) 같은 경우 많은 결실을 하고 있는데 농어촌부와 도시교회의 농활사역이 연계되면 농어촌교회에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큰 재정적인 후원 없이도 성도들 인재풀을 통하여 사역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물론 이미 개교회적으로는 섬기고 있는 일들이기도 합니다만 보다 더 조직적이고도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작은 교단이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도 많지만 작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일들도 많을 것입니다. 목회자 중심이 아니라 교회 살리는 운동들이 일어나고, 재능 기부도 일어나고, 보도기관인 개혁신보가 이런 사역을 많이 다루어 줄 때 우리 교단이 살아있는 교단으로 서게 되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활성화가 되지 않겠는가 기대해 봅니다.
농어촌목회자들의 호구지책을 위하는 것 같은 생각들은 농어촌목회자들에게는 심히 민망한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농어촌교회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누리고 이웃 동네에 보여주는 것을 더 원합니다.
그동안 힘이 없어 못했으면서도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져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