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하는 피조물(被造物)들의 신음소리_조석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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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하는 피조물(被造物)들의 신음소리

 

 

< 조석민 목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

 

 

“식용 동물의 삶일지라도 최소한의 편의 제공해야”

 

 

구제역(口蹄疫)으로 인하여 많은 소와 돼지를 살처분(殺處分)하고 있는 현재의 암울한 상황은 이명박 정권의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경북 안동에서 2010년 11월 23일에 최초로 구제역 의심 신고를 한 이후 대통령이 구제역 발생 50일만에 구제역 방제 현장을 찾은 2011년 1월 16일까지 살처분된 소와 돼지의 숫자는 188만 마리로 폭증했다.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소와 돼지의 숫자가 축산업 붕괴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온 200만 마리에 육박하며 축산농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축산업 붕괴의 위기가 현실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핵심들은 구제역에 대해 안이한 인식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살아있는 소와 돼지들이 살려고 발버둥치는 데도 사람들은 구제역 예방이라는 규정 때문에 멀쩡한 소와 돼지를 땅 속으로 밀어 넣어 생매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게 과연 사람이 할 짓인가? 이제 막 태어난 돼지새끼들을 어미돼지와 함께 무차별 살처분하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인가? 살처분이 아니라 백신예방 접종은 해결책이 아닌가?

 

구제역 살처분 초기 때부터 시민사회단체들이 EU 등 선진국들은 무차별 살처분을 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하며 살처분 중단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그 목소리를 묵살했다. 축산업 붕괴 위기와 함께 살처분 보상과 백신접종, 방역작업 등에 투입된 재정이 거의 2조원에 이른 상태다. 이 정부가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듯하다.

 

어미돼지와 이제 막 태어난 새끼돼지들을 함께 살처분하는 현장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이제 갓 태어난 새끼돼지들은 생애 처음으로 흙을 밟아보는 기쁨에 들떴겠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개보다 후각이 100배나 발달한 돼지들이 악취 가득한 돼지 우리에서 빠져나와 상쾌한 바깥 공기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행복 그 자체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환희였다.

 

어미돼지와 함께 새끼돼지들은 구덩이 속으로 우르르 내몰렸다. 어미돼지와 새끼돼지들 머리 위를 포클레인이 사정없이 내리쳤다. 순간 돼지들의 신음은 비명으로 바뀌며 귀청을 찢었다. 이것이 살처분 현장의 장면이었다.

 

이런 살처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돼지들의 신음소리와 소 울음소리의 환청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구제역 방역을 하고 있는 수의사 한 사람은 소 울음소리와 돼지의 비명 소리가 계속 귓속에 들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이며, 잠을 자면 돼지들과 소떼에게 쫓기는 꿈을 꾼다고 말한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이원복 대표는 돼지들이 지르는 비명소리에 보름이나 환청에 시달렸다고 한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출 23:19)고 가르친다.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생명을 존중해야 하며 인도적으로 다루라는 사상을 교훈하는 말씀이다. 하지만 구제역 살처분 현장에서는 “동물을 죽이더라도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동물보호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단기간에 100만 마리 이상의 가축을 살처분해야 하는 전대미문의 사건 현장에서 모든 동물을 안락사 시킬 여유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록 인간의 먹거리가 될 식용 동물의 삶일지라도 최소한의 편의를 제공하고, 고통을 최대한 줄여줘야 한다는 인도적인 사상이 기본 원칙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축의 사육, 운송, 도축 등 전 생애에 걸쳐 동물복지가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물복지의 주창자들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비좁은 사육 공간이다. 겨우 일어서서 먹이를 먹고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암퇘지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은 보기에도 애처롭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동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돼지의 경우 자동 급여되는 사료를 먹고 축사 한 귀퉁이에 마련된 배설 장소로 이동해 용변을 본 뒤 돌아와 바닥에 엎드려 잠을 자는 것이 거의 전부다.

이런 단조로운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은 대개 높은 공격성을 보이고 있다. 밀폐된 좁은 축사 내 공기 오염과 스트레스는 동물을 각종 질병에 취약하게 만들고, 면역성을 떨어뜨려서 구제역 등 동물 전염병의 전파 속도도 빨라진다는 것이다.

 

구제역은 어쩌면 인간이 일차 원인이 되는 가축 전염병일지 모르겠다. 단기간에 육용 동물들을 밀폐된 공간에서 사육하여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의 욕심이 수많은 소와 돼지들을 산채로 죽음으로 몰아낸 결과 일 수 있기 때문이다.

 

A4 용지 한 장 크기의 배터리 케이지에선 암탉 두 마리가 평생 알만 낳는다는 보고이다.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키우는 닭이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리면 집단 폐사하지만, 야생 철새가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한국동물복지협회 조희경 상임대표의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구제역과 살처분되는 동물들의 상황은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일까? 구제역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엄청나서 경제 성장에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만이 우리의 관심사일까? 성경을 알고 그 말씀을 조금이라고 묵상하며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동물을 먹거리로 주셨지만 그 동물들의 생명도 귀중함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기 때문이다.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출 3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