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한 복음송 양산(量産)은 경계하여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배드리며 언제나 시편 찬송을 불렀다. 사도 바울도 하
나님을 찬양하는 사역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함으
로 찬양하고 서로 찬양하며 위로하라고 가르쳤다.
찬양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전에는 전혀 부를 수 없었던 것으로 예수 그리스
도께서 베푸신 중생을 체험한 인격만이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노래를
부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생애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새 기쁨과
새 평화 그리고 새 힘을 공급해 주신다.
모든 음악은 그 목적에 따라 만들어졌고 적용되고 있다. 시대와 상황이 바뀐
다해도 하나님께 대한 찬양의 내용은 동일해야한다. 계시록 5:11-12에 나타
난 천사들이 어린양을 찬양한 내용을 보면 그들은 능력이 그리스도께 있음
을, 힘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음을, 영광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음을 찬양하였
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찬양하였다.
성도들간에 불리어지
고 있는 복음송의 역사는 1800년 미국켄터키주에서 일어
났던 대 부흥운동집회시 회중들이 부르기 쉬운 곡에 가사를 붙인 것이 시작
이었다. 이러한 복음송은 구원에 대한 메시지와 성도들의 신앙적 간증, 하나
님께 대한 찬양들을 어린이들도 이해하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가사와 곡
에 붙인 것으로 전도를 목적으로 갖는 집회에서 가장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는 인간의 감정만을 자극하는데 치중하는 저속한 복음
송이 양산(量産)되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이는 엄히 삼가고 경계하여야 할
일이다. 예배 음악에 반 기독교적인 문화와 음악을 수용한다는 것은 바른 자
세가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리듬과 멜로디의
음악만이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적당하고 복음을 전하기에도 적당한 올바른
그릇이다.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간의 영적인 교
통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찬양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감사와 기쁨
을 충만히 느낄 수 있고 마음이 밝아지고 뜨거워지게 하기 때문이다. 찬송
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으로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고
변화를 받
아 성장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