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정신적 허탈감 채워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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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정신적 허탈감 채워줄 수 있는가?

송영찬 국장 daniel@rpress.or.kr

요즘 주변을 살펴보면 정신적 허탈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오죽하면 복권에 목숨거는 사람도 있다. 소
위 로또 인생이라 불리는 이들에게선 미래의 청사진에 대한 계획을 찾을 수 
없다. 오로지 일확천금의 꿈을 위해 하루, 하루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
을 뿐이다. 그뿐 아니라 아예 삶 자체를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하여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 질서가 무너지는 부작용이 지속되고 있다. 

지구상에서 최고의 사회복지국가로 알려진 북유럽 나라 사람들의 자살율이 
그렇지 않은 나라 사람들보다 높다는 사실은 세상의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사
람들의 정신적 공허와 허탈감을 채울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처럼 물질적 풍요를 약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정작 삶의 의미
를 찾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교회는 과연 정신적 허탈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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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주고 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는 먼저 인생의 존재 의의와 가치에 대한 확고
한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인
생이 가지는 위치 설정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이 하나님과 어
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정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인생의 본분을 찾고 그 본분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해답은 소위 문
화명령이라고 알려진 창세기 1장 26-30절이다.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인
생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여타의 피조물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각각의 모양대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사람만은 
하나님의 인격을 가지고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사람은 이 인격을 통해 하나
님과 교제를 나누는 유일한 존재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하나
님께서 친히 동등한 수준에서 사람을 대우해 주심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와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 

둘째,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데
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
의 관리자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이 바로 그 목적이다. 사람은 세상에 있어
서 왕과 같은 위치에 있다. 이 왕적 사역은 세상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
은 대로 잘 관리하여 처음 창조된 그 모습을 잘 간직할 뿐만 아니라 점차 하
나님의 영광이 더 충만해지기 위해 인간에게 위임해 주셨다. 

셋째, 왕적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든 여건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
이다. 아담이 스스로 자기의 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하나님
께 충성하도록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왕적 사역을 행사할 수 
있는 완성된 국가의 형태를 주셨다. 왕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생존의 기본
권인 식물(植物)을 주셨고 아담의 통치를 받는 다른 것들에게도 생존을 위
한 식물을 주셨다. 기본적인 생존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최상의 여건을 
다 허락해 주셨다는 것은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사람은 자기의 인격을 온전하고 정상적으로 발휘할 때 
자기의 본분을 다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상한 이성을 발휘하
기 위해선 
창조주 하나님과 먼저 긴밀한 교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
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인생으로서 가장 복된 위치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된 위치에서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임
의대로 살겠다고 할 때에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할 인생으로서 심각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 즉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과 일치한 사
상을 바탕으로 세상을 통치해 나가야 할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
지 않은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경영하고자 할 때에는 당연히 하나님과의 관
계에서 마찰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마찰이 빚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독
자적으로 자기의 통치 영역을 확보하겠다는 발상일 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신
들이 세상의 통치자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왕적 통치권을 하나
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람으로서 이와 같은 행위를 한 것은 더 이상 하나님
과의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해보겠다
는 발상에서 나온 행위이다. 

현대인들이 빠져있는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왕적 통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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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행사함에 있어 하나님을 위하지 아니하고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커다란 착각이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물질적 풍요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인생은 생존권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피조물의 통치자로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존재해야 하
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가 현대인들에게 제시할 해답은 분명해진다. 곧 
교회가 먼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 나
라의 공의와 공평을 실천함으로써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친히 드러내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곧 교회가 이 땅 위에서 건설하는 찬란한 기독
문화이다. 이 길만이 딜레마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교회가 제시할 수 있
는 유일한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