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쳐 가며 살고 싶다
<장인선 작가|수필가>
그래도 어쩌랴. 적어도 내 추한 모습을 아니까
주님께 기도하고 고쳐 가며 살아야지
우리 가족의 별난 특징이 언어의 돌직구를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도 돌직구를 잘 던지면서 남이 내게 그리하면 상처를 잘 받는다는 것이 모순이다. 어느 날 언니가 내게 또 돌직구를 던졌다. 나의 장애 상황을 거론하며 장애가 무슨 벼슬이냐는 식으로 아픈 말을 한 것이다. 사실 언니가 그러는 것은 비아냥이 아니라 내가 일상에서 장애 핑계를 대며 나약해질까봐 특별 대우하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그런데 좋은 충고로 알고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일을 그날따라 나는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 결국 마음의 병을 얻었다. 보통 때 같으면 “그래? 나는 언니와 다르잖아. 세상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재미도 있고 아름다운 거야. 모두가 똑 같으면 얼마나 따분하고 답답해?”라고 했을 텐데 그 때는 언니의 말에 내가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졌고 내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기생충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은 정말 나쁘다. 사람은 상처받기 쉬운 쓸데없는 자존심보다는 항상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진정한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이 그 형상으로 우리를 창조하셨고 만일 무슨 어려움이 생겼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이 내가 알지 못 하는 커다란 뜻이 있을 거라고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머리로는 그때의 생각이 나쁘다는 것을 알았지만 계속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 나는 생각조차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구나.”
결국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정신과 선생님께 내 상황을 말씀 드리고 약을 더 타왔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좋은 병실에서 단잠을 잤고 때가 되면 언니가 밥을 차려 주고 또 쉬었다가 심장약과 정신과 약을 같이 먹으며 회복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가난한 것은 사실이지만 감사한 것은 약 사먹을 돈과 병원에 갈 돈은 있고 대한민국이 전보다 좋아져서 장애인들에게 주는 혜택이 있다는 점이다. 이제 곧 국민연금도 타기 때문에 물질로 비참해지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미우나 고우나 항상 내 옆에 우리 언니가 있다.
문제는 내 상황이 좋아지고 나이를 더 먹어 가는데 내가 그만큼 모든 것에 감사하며 성숙해지고 있는가이다. 여전히 잘못된 자기의식으로 쉽게 상처 받고 자학하는 면이 남아있다면 나는 아직 어린아이인 것이다. 나는 나대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데 장애를 가졌다고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쉽게 상처 받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엉성하고 어설픈 성격을 가진 자라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런데도 아직도 누구에게 아쉬운 부탁을 잘 못하고 누가 내게 싫은 소리하고 야단을 치면 그저 참지 못하고 내 분을 삭이지 못한다. 나이를 더 먹으니 불필요한 자존심이 쓸데없이 더 커졌다. 지금보다 여러모로 상황이 안 좋았던 옛날에는 누가 책망을 해도 웃고 남에게 부탁도 잘하는 나였는데 오히려 걱정거리 없는 요즘엔 속이 더 좁아도 너무 좁아졌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고 누구와 안 좋은 감정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인간관계를 끝내고 만다. 이러니 내가 진정 행복한 사람인가? 어른다운 어른인가? 그저 부끄럽다.
결국 아름답고 삶의 여유가 있고 좋은 언어를 쓰고 성품이 따뜻해서 누구나 기대고 싶어 하고 닮고 싶어 하는 어른이 아니라 나이만 앞세운 보기 흉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그래도 어쩌랴. 주님께 기도하고 고쳐가면서 살아야지. 나는 적어도 나의 이런 추한 모습을 아니까 고쳐 가며 살려한다. 주님의 성품을 닮은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다.
* 장인선 작가는 몸이 연약하고 불편함에도 믿음으로 살면서 많은 수필을 발표하여 주님의 은혜와 감동을 나누고 있다. 저서로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 때(1990. 12), 이 시간이 있음으로(1992. 11), 만일 한 가지 소원만 말하라면(1994. 6), 아픈 마음의 노래(1996. 5), 작은 사랑의 노래(2001. 2), 허물(2003. 3), 가난한 여자의 행복(2007. 12), 어른 아이(2016. 1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