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를 바라보며
< 나종천 목사, 한사랑교회 >
“악의 세력들에 대한 최종적인 단죄와 보복은 하나님께 맡겨야”
주말 농장에 있는 밭 몇 고랑에 이런 저런 채소 모종을 심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저런 행사가 계속 이어져 오랜만에 밭에 갔더니 밭은 온통 잡초로 가득 차 있었다.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가라지들은 보이는 족족 그 때 그 때 솎아주는 것이 정답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나중에 거둘 것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밭은 온통 가라지 판이 되어 쓸쓸한 추수철을 맞이할 것이다.
마태복음 13장는 밀과 가라지 비유가 나온다. 종들이 “쓸데없는 가라지들을 모조리 거두어낼까요?”하고 주인에게 물었다. 그러나 주인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할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할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 인생 그리고 세상만사에 대한 최종적인 판결에 대한 결정권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소중한 인간 존재 혹은 인권이 무시당하고 유린당할 때, 그리고 불의가 판을 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묵인하며 그저 기도만하고 신앙생활에만 전념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동의 선이 무시될 때 그리고 누군가의 야심으로 인해 공동체 전체가 흔들릴 때 그리스도인은 용감히 반대의 깃발을 올려야 할 것이다.
우리 선배들이 신사참배를 반대하면서 고난과 순교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그리고 “교권의 횡포로 말미암아 누적되어온 부조리와 부패 때문에 사분오열된 교단의 장화 및 합동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본교를 설립한다”며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바른신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을 목표로 우리 교단과 신학교를 설립한 교수진과 선배들처럼 행동할 때도 있어야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성이 맑지 않으면 우리의 결정이 아주 무서운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유대의 최고 종교지도자인 ‘가야바’라는 대제사장이 한 말을 들어 보라.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그가 예수님을 죽이자고 민중들을 충동질하면서 한 말이다. 이 한마디 말이 가야바의 인간됨을 결정짓는 말이 될 줄은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가야바는 한 생명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할 신앙인이었지만, 다수의 이름으로 한 생명을 죽이는데 서슴지 않는 위선자였음을 밝히 드러내 준다. 역사는 이 말 한마디를 성경에 기록해 놓고, 가야바라는 인물을 오고 가는 세대에 끊임없이 평가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죄악이 관영하고 불법이 판을 치고 있다. 최근 우리 민족에게 큰 아픔을 안겨 주었던 세월호 사건도 그 죄악과 불법으로 일어난 사건인 것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거기에 대한 여러 말들이 난무하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더구나 주님의 뜻을 따르는 예수의 제자들이라면 사실을 사실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최소한 법적인 문제 이전에 지금 희생자 유가족들의 아픔을 우리 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주님이라면 어떻게 찾아가실까, 이때 교회의 사명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조심할 것이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모순되고 폭력적인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주 종들처럼 생각했다는 점이다. “저 악한 인간들을 지금 당장 모조리 쓸어버릴까요?” 이처럼 사람들은 인간의 관점에서만 생각한다. 최종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역할을 인간이 직접 수행해버리려고 하는 유혹 앞에 서게 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직접 판단하고 결정하고 복수하려고 한다.
때로 하나님은 침묵 속에 계시는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께서는 정한 계획에 따라 직접 세상을 통치하신다. 하나님만이 인간에 대한, 이 세상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의 권리를 지니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악의 세력들에 대한 최종적인 단죄와 보복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주인은 가라지들이 있는 밭에서도 탐스런 결실을 머금은 밀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