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교회를 닮은 김장하기
<박종훈 목사 _ 궁산교회>
김장 재료처럼 자아가 죽은 성도는
어느 신자와도 어울리며
주님을 섬기는 일에 조화를 이루는
연합공동체의 지체
농부의 마지막 농사는 김장을 하므로 한 해 일을 마무리한다. 모든 만물이 쉼을 얻는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주식인 밥과 함께 빠질 수 없는 반찬은 김장김치이다. 김치는 반찬의 주식이다. 지금은 농사일을 비롯 모든 가사 일에 남녀가 구분 없이 함께 하는 추세이다.
황혼의 나이에 두 부부가 김장을 하는 정다운 모습은 시골의 자연스런 풍경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필자도 아내와 함께 김장을 담은 지도 벌써 몇 해나 됐지만 아내는 여전히 고민하면서 해야 했다. 손주가 있어 할머니라 부르는 나이지만 그동안 직장생활 하느라 김장을 담는 전 과정은 아직도 헤맨다. 성도들이 와서 도와주면 심부름하느라고 정작 과정을 숙지하지 못하고 지나간다. 올 해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며 버물 때만 성도들이 와서 협력해서 겨우 마친가 싶었는데 찹쌀 죽을 빠뜨린 것이 발견되었다.
김장을 하면서 옆에서 거들며 살펴보니 과정의 모든 원리가 교회의 성도들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김장의 주재료인 배추는 세 번은 죽는다고 어떤 분이 표현했었다. 밭에서 자를 때 한 번, 소금물에 두 번, 그리고 사람 입으로 들어갈 때 세 번 죽는다고 한다. 밭에서 자랄 때는 여러 병충해와 싸우면서 몸집을 불리며 속이 꽉 차야 김장하기에 알맞은 상태가 된다. 수확한 배추는 일차적으로 겉잎을 따고 반절 자른 후 소금물에 절이는 작업을 한다. 약 24시간을 절이면 서슬 퍼런 배추가 순한 양처럼 부드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다. 소금의 농도가 적거나 시간이 덜 되면 뻣뻣한 모습을 보고 덜 죽었다고 아낙네들은 말한다.
배추를 절이는 가장 큰 이유는 양념을 골고루 섞기 위함이며 다루기가 쉽다. 아무리 좋은 상품인 배추라 할지라도 죽지 않으면 부서지고 부피가 커서 그 어떤 다른 양념과 어울릴 수 없게 된다. 교회는 가장 다양한 사람들, 즉 빈부귀천, 남녀노소 차별 없이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곳이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이 공동체에서 조화를 이루며 가는 처음 조건이 자아를 죽어야만 섬기는 모든 봉사를 할 수 있다. 아무리 유능한 신자라도 속사람이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일을 할 수가 없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 변화되지 못한 인격은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없고 오히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남에게 상처와 여러 문제만 일으킬 수가 있다.
사도 바울처럼 자신은 십자가에 죽고 오직 그리스도가 살면 변화된 신자로서 교회의 지체가 된다. 모든 것을 완벽해야 직성이 풀리던 사람이라도 부족함을 이해하는 용납하는 성도가 되며, 자신의 말만 하는 사람이 남의 말도 들을 줄 알며 융통성 있는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려 깊은 사람이 된다.
소금물에 절여져 부드럽게 달라진 배추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서너 번의 씻는 과정을 겪는다. 배추가 자라면서 잎 사이로 스며든 먼지와 교묘히 숨어 잎을 갉아먹는 여러 벌레들을 씻어내는 이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채반에 얹힌 배추는 물이 빠지면, 비로소 준비된 양념과 버물리는 연합의 순서로 들어간다.
양념은 지역과 개인의 기호에 따라 수십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여름내 피 땀 흘리며 마련한 고춧가루를 비롯하여 바다에서 얻은 곰삭은 젓갈, 마늘, 양파, 미나리, 갓을 비롯한 여러 채소와 사과나 배 같은 과일도 들어간다. 이 양념 자체를 분쇄기로 갈아서 준비된 배추와 골고루 섞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야말로 맛과 색과 모양, 영양, 향기가 서로 다른 재료들이 어울리는 종합 예술 같은 양념들이다. 주부들은 이 양념을 가지고 배추 사이사이를 채워놓으면 서서히 발효되어 오래도록 저장해서 먹을 수 있는 중요 반찬이 완성되어간다.
교회도 자아가 죽은 거듭난 성도는 어느 신자와도 어울릴 수 있으며 주님을 섬기는 그 어떤 일도 조화를 이루는 진정한 연합공동체의 지체가 된다. 김장에 들어가는 다양한 재료는 양과 크기가 무조건 많아야 좋은 것은 아니다. 각 재료마다 독특한 특징이 있어 적당하게 넣어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교회의 신자는 자연만큼이나 다양한 재능과 은사와 기질을 비롯해 신앙의 차이가 나지만 예수 이름으로 하나가 되며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하는 통일성과 다양성을 이루는 몸된 교회가 된다(고린도전서 12장 12절~27절).
이제 갈수록 젊은 세대들이 사는 복잡하고 분주한 생활에 김장도 공장에 맡기는 편리함이 대세로 가고 있지만 집마다 맛의 독특한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공장형 김치 맛이 자리잡아간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교회 공동체도 도시형 번영화 실용화되기보다는 지역과 그 환경에 맞는 자연스런 교회가 되었으면 한다.
김장의 마지막 단계는 숙성의 과정이다. 먼저 먹는 것과 나중에 먹을 것의 차이를 두고 용기에 담아 놓는다. 냉장고 시설이 없을 때는 남정네들이 파 놓은 옹기 항아리에 저장하여 오래도록 두고 먹지만 지금은 전용 김치냉장고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거의 일 년을 두고 먹지만 여름부터 잘 익은 김치는 충분히 숙성되어 있다.
맛있는 김치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정도로 다른 반찬이 필요 없는 만족함을 준다. 잘 성숙된 묶은 김치는 어떤 재료와도 어울릴 수 있는 깊은 맛과 영양을 가지고 있다. 고등어를 넣어도 맛있고 즐겨먹는 돼지고기와도 잘 어울리며 두부를 비롯해 어느 반찬에도 김치를 빼 놓을 수 없는 중요 반찬이 된다.
교회 공동체에서 성숙한 단 한사람의 영향은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주는지 보배같은 존재이다. 마지못해 섬기는 형편이 아닌 자발적인 봉사와 섬김으로 다른 신자들에게도 본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 잘 익은 아삭아삭한 김치하나가 음식에 만족을 주듯이 성숙한 성도 한 사람은 하나님과 목회자를 시원케 해 주는 귀한 성도가 될 수 있다. 여러 계층이 많은 교회 공동체에서 누구에게나 어울리며 칭찬받고 사랑받는 성도가 된다. 이런 신자가 각 교회마다 한 분만 있어도 좋은 누룩처럼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도구로 쓰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