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선언문 문제 제기(2)| 제7항(역사교육)의 문제점 _ 김중락 교수

0
202

총회선언문 문제 제기 <2>

 

103회 합신 총회 선언문

제7항(역사교육)의 문제점

 

<김중락 교수_경북대, 역사교육, 대구 말씀동산교회 장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요구하는 취지가 아니길 바라며
표현의 오류라면 이에 대한 분명한 해명과 수정을 부탁한다

 

지난 9월 19일 대한예수교 장로회(합신) 총회는 이른바 「총회 선언문」이라는 문서를 채택하였다. 이 문서는 종교인 과세, 동성애, 무슬림 인권, 국가안보, 병역거부, 사회복지 시설에서 종교 행위, 역사교육 등 우리 사회의 여러 쟁점들에 대한 합신의 우려와 희망을 피력하였다.

통치의 영역은 종교와 분리되어 있으며 기본적으로 교회의 간섭을 배제하지만, 교회가 이 정도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내용이 과연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것인가는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평소에 주목하고 신뢰하는 합신은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한국의 대표적 장로회 교단이다. 합신 총회의 결정은 수많은 한국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공적 선언문을 채택하는 행위는 매우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선언문은 자신의 의견 및 주장을 공표하는 매우 짧은 글로서, 사용되는 모든 단어, 구와 절, 문장이 압축적이고 정제되어야 하며 그 의미는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에 발표된 합신 선언문은 내용과 문장 면에 있어 모두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선언문 중 “7. 역사 교육에 대하여”는 중대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선언문을 살펴보자.

“역사 기술은 역사적 사실만을 기술한 질과 양에 있어 공정함과 형평성을 유지할 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 역사의 특정한 부분을 파편적으로 부각시키거나, 선호하는 사건을 편중된 시각으로 설명하거나, 역사에 이념화된 해석을 가하는 것은 과거를 왜곡시키고 현실에 눈멀게 하며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부는 역사 교과서를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교육계는 바르게 교육하기를 희망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기본적으로 선언문은 역사가(歷史家) 개인의 역사관이 그의 역사기술에 필연적으로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으며,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데서 큰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성경적이지도, 개혁주의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역사 교육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선언문은 “역사 기술은 역사적 사실만을 기술한 질과 양에 있어 공정함과 형평성을 유지”해야 하고,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선언문의 취지는 특정 종교나 정파에 편향적인 역사 기술을 배제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만일 역사가가 의도를 지니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사료를 왜곡한다면 이는 적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선언문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역사는 사실만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며, 역사적 객관성이란 것도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든 인간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듯 역사가도 자신만의 역사관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개인의 역사관은 필연적으로 역사 기술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성경의 4복음서가 동일한 사건을 서로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역사가로 하여금 자신의 시각을 배제하고 사실만 기술하라는 것은 19세기 실증주의의 시각이며 시대착오적 주장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색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색안경의 유무가 아니라 색깔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역사는 정답을 가진 수학 문제와는 다르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역사 해석을 획일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폭력에 불과하다.

또한 선언문은 정부에 “역사 교과서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과서 제도는 누구든지 집필할 수 있지만 정부의 검정을 거쳐야 하는 검인정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선언문은 정부에 철저한 검인증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기술”해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문장 그대로라면 분명히 국정 역사 교과서를 요청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만일 그런 취지라면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최근 일부 기독교인들이 현재의 역사 교과서에 종교편향이 심하다고 주장하며,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요구하는 100만인 서명 운동에 들어갔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국민일보 9월 8일자). 이 운동이 기독교 권익 보호를 위해 외치는 근본주의자들의 다른 운동들과 맥이 통한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합신 선언문의 초안자들이 이 운동과 무관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아울러 선언문의 제7항이 본래의 취지대로 쓰이지 못한 표현의 오류라면 이에 대한 분명한 해명과 수정을 부탁하는 바이다.

그러면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무엇이 문제인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역사에서 하나의 해석을 강요하는 것이다. 역사는 하나의 해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학생들에게 각 해석의 장단점을 평가할 수 있는 역사적 사고력을 고양시키는 교과목이다. 역사 교과서의 단일화는 학습자의 사고력을 고착화시킬 것이다. 아이들은 역사 교과서를 ‘바이블’로 여길 것이며, 역사 해석에 대한 비판적 기능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획일화에 익숙한 세대는 전체주의에 쉽게 동화될 것이고, 종국에는 스스로를 독재에 구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무엇보다도 역사 해석이 정부에 의해 독점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선언문에 표현된 “역사에 이념화된 해석을 가하는 것은” 역사가들보다는 주로 정치가들의 행습이다. 역사 교육은 학생들을 이념화시키기 좋은 도구이며, 수년 후 유권자가 되는 그들의 투표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희생물이 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정권들이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역사 교육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이 중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다. 지난날 역사 전쟁의 홍역을 치러낸 지금, 우리는 또 다시 역사 교육을 혼란으로 내몰 것인가!

현재 한국 역사 교육계의 절대다수가 국정화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를 정부가 장악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가 달라져야 할 것이고, 공적인 해석이 달라질 것이다. 자라나는 미래세대가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국정교과서와 공적 해석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역사 교육 전문가들의 주장처럼, 역사적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역사교과서는 다양해야 하며, 이에 대한 이의 선정은 학교와 교사에 맡겨져야 한다. 필자는 역사교육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함을 믿는다.

선언문이 주장하는 것처럼, 현재 역사 교과서들에 균형이 결여되어 있다고 전제해 보자. 기독교의 사회적 공헌이 타종교와 비교해서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보자. 한국의 근대화와 독립운동에 기독교의 기여가 무시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 보자. 그래도 결론은 국정화가 아니다. 검인정 체제 내에서 균형 잡힌 교과서가 없다는 것은 역사 교육계의 책임이고, 필자를 비롯한 기독사가들의 책임이기도 하고, 기독교계 전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어쩌면 현재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가져온 반작용인지도 모르겠다. 해결은 간단하다. 각 교단과 기독교출판사들은 균형 잡힌 시각을 지닌 집필자를 발굴하여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도록 후원하고, 기독역사교사들은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노력하면 될 것이다. 모두가 납득할 만큼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라면, 결국 시장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적 역사관에 따라 역사를 해석한다. 또한 역사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의 종말이 있음을 믿고 있다. 성경의 역사서들은 철저하게 이러한 시각을 가진 역사가들에 의해 기술되었다. 이러한 사관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저변에 흐르는 역사 교과서는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역사 해석이 획일화되고 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장악한다면 기독교적 역사 해석은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김중락 교수

경북대, 영국 케임브리지 대 박사(역사학)
역사교육회장 역임, 영국사학회장
<주요 연구 분야> 스코틀랜드 교회사, 웨스트민스터 총회, 청교도 영국혁명 등.
<저서>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사 – 존 녹스에서 웨스트민스터 총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