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선언문 해설(2)| _ ‘역사교육에 대한 선언’에 대하여 _ 안상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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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선언문 해설 <2>

제103회 합신 총회선언문의

“역사교육에 대한 선언”에 대하여

 

<안상혁 교수 _ 합신, 역사신학>

 

제103회 총회가 발표한 <선언문>의 일곱 번째 조항 “역사교육에 대한 선언”과 관련하여 교단 안팎으로부터 몇 가지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아마도 두 가지 문제가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 같다.

첫째, 역사기술의 가치를 오로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것에 두는 것으로 표현한 부분과, 둘째,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이 마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듯한 표현이라는 지적이다. 합신에서 교회사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또한 합신 총회를 사랑하고 특히 교단의 하나 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원으로서 몇 가지 개인적인 소견을 적어본다.

첫째, 필자가 <선언문>의 마지막 항목을 처음 읽었을 때 한편으론 역사 전공자로서의 자존감이 다소 위축되었다. 마치 <선언문>은 해석된 역사 혹은 역사가의 해석 행위를 배제해버리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객관적인 역사기술이라는 표현은 필자에게 범상치 않은 의미로 다가왔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역사가를 향한 일종의 질책으로 느껴졌다.

이는 1980년대에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필자의 세대가 국사 시간에 현대사를 공부할 수 없었던 특별한 역사적 경험과 관련이 있다. 당시 많은 학교에서 교사들은 해방 이후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고, 시험에 출제하지도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적지 않은 부분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위 객관적 사실조차 얼마든지 은폐되거나 왜곡될 수 있고, 심지어 없던 일도 조작되어 역사 교과서에 실릴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역사학도의 길을 걷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강의실에서는 이미 옛 시대의 사관(史觀)들 가운데 하나로 배웠던 랑케의 “사실 그대로”의 역사 기술을 강조하는 시각이, 당시의 한국 현실에서는 여전히 당위적이고 매력 있게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제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필자의 자녀들이 가끔씩 한국 현대사의 사건들에 대해 질문을 한다. 학교에서 한국 현대사를 배울 수 있게 되었으니 확실히 부모의 세대보다 사정이 나아졌다. 이로 인해 묘한 안도감과 함께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여전히 필자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오늘날 또 다른 입장에서 역사 교육이 잘못 이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특정한 이념적 편향성에 의해 객관적인 역사 서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우리 교단 안의 적지 않은 수의 목회자들도 우려를 표명한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질문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역사적 사실인가?” 물론 모든 역사적 사실이 어느 정도 “해석된 사실”이라는 것을 오늘날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역사적 사실”이라는 화두는 다양한 이견이 서로 대면할 수 있도록 만남의 장을 제공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선언문>이 강조한 객관적인 역사 기술은 어느 한 편의 입장을 배제하는 논리로 사용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혹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역사적 사실만을” 기술할 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는 표현을 완화시키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사실 진정한 가치는 성경과 복음진리에 부합하는 역사교육 안에서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이것을 <선언문>에 명시하지 않을 바에야 <선언문>은 최소한의 선을 지켜달라고 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사 교과서가 과거의 사실을 왜곡하거나 조작하지 않고 기술하는 것은 최소한의 기본이지 이상적인 목표는 아닐 것이다.

둘째, 필자가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선언문>은 현 정부에 의해 일단락 지어진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의를 다시금 쟁점화 시켜 국정화를 찬성하는 주장을 개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사 국정화에 대한 의견 대립이 있음을 직시하고 국론 분열이 아닌 화합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희망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생각의 근거는 단순하다. <선언문>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명시적으로 요구하거나 찬성한다고 진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정화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우리 교단 안에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는 우리 안에서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포용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부가 언급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선언문>이 정부를 중요한 청자(聽者)로 삼아 말을 하고 있다는 것과, 국정은 물론 검정 교과서도 결국은 국가가 공인하는 저작물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필요 이상의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역사기술의 주체라기보다는 바른 역사 교육을 보장하는 주체로서 수정하여 표현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해 본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우려되는 사항을 언급하고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우려는 <선언문>을 계기로 우리 교단 안에 진영논리가 침투하는 것이다. 선의를 가지고 대외적인 사역을 시작하려다가 총회 안에 일치가 깨어지고 이것이 각 지교회들에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또 다른 우려는, 우리 안의 단합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마땅히 외쳐야할 때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 교회에게 맡기신 파수꾼의 직무를 유기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이다.

두 가지 극단을 피하기 위해서는 <선언문>에서 제기한 여러 가지 항목들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을 선별하여 그것에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신앙의 선한 양심을 가진 신자들 사이에도 다양한 이견을 가지고 있는 지교회의 상황을 고려할 때, 가능하면 가장 많은 사람이 함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한두 가지에 집중하고 나머지 항목들에 대해서는 한 가지씩 단계적으로 의견을 수렴해 가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