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특강| 페미니즘을 어떻게 볼 것인가(1) _ 홍구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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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특강

 

페미니즘을 어떻게 볼 것인가(1)

<홍구화 교수 _ 합신|기독교상담학>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 섹슈얼리티의 위험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재등장한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선택의 자유와 실천 역량의 회복을 근본 과제로 한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호주제 폐지, 성매매 특별법, 여성 할당제, 군가산점제 문제,
성희롱 성폭력 문제 등 남녀평등에 초점이 있다.

 

  1. 들어가며

한국 사회는 전후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경제 성장과 더불어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유교 가부장제에 도전을 던져온 페미니즘은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2016년 강남역 부근 화장실 여성 살해 사건을 사법기관은 조현병 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한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혐오’에 기반한 ‘여성 살해’(페미사이드)로 규정하였다. 2016년에 출간된 『1982년생 김지영』은 김지영이라는 30대 여성의 성장 과정과 일상생활을 통해 우리 사회에 내면화된 성차별적 요소들과 여성 혐오 현상을 고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 초부터 몇 개월간 일어났던 미투 운동(Me Too Campaign, #MeToo)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일들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미투 운동은 법조계, 정치계, 문화계, 학계 등을 망라하여 일어났으며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피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면서 미투 운동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페미니즘 단체가 벌이는 시위와 운동이 올해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하였다. 페미니스트들은 혜화역과 광화문역에서 네 차례에 걸쳐 홍대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를 벌이며 수사에 있어서 공정성과 양성 평등을 요구하였다. 또, ‘꾸밈 노동’이라는 여성 억압으로부터의 탈출을 부르짖는 탈코르셋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혐오 발언(예: 김치녀, 된장녀, 맘충 등)에 대해 미러링(mirroring) 전략으로 남성 혐오 발언(예: 김치남, 한남충, 애비충 등)으로 응대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페미니즘의 기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먼저 페미니즘의 흐름을 살펴보고 개혁주의 신학과 상담의 관점에서 페미니즘을 비평해 보고자 한다.

 

  1. 서구 페미니즘 흐름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핵심 가치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 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페미니즘의 선구자로는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가 꼽힌다. 그는 『여성 권리의 옹호』(1792)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을 것을 주장하며 여성이 남성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활동 전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 올스턴크래프트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여성의 예속』(1869)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초기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원하는 삶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한 삶을 살 수 있게 여성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존중해 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제1세대 페미니즘(제1의 물결)은 이를 이어받아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전개되었다. 제1세대 페미니즘은 법적 수단을 통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으려 했으며 여성의 자유와 선택을 중시하였다. 특히 1890년에서 1920년 사이에 미국과 영국 등에서 일어났던 여성 참정권 운동이 핵심이었다. 결과적으로 최초로 1893년에 뉴질랜드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보장되었고 1920년에 미국에서도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이후 실시된 첫 선거(1948년)부터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제2세대 페미니즘(제2의 물결)은 1960년대 후반의 신좌파, 흑인 민권 운동, 게이해방운동, 성 혁명, 반전 운동 등의 등장과 함께 대두하였다. 남녀 차별적 관행뿐만 아니라 가부장제 철폐를 목표로 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 계열이 주가 된다. 1963년 미국의 베티 프리댄(Betty Friedan)은 『여성성의 신화』를 통해 페미니즘의 제2물결을 촉발시켰다. 그는 많은 여성들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서도 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모성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을 과도하게 찬양하는 사회를 비판했다. 『여성성의 신화』는 1963년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을 천명한 임금평등법이 제정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에 경구용 피임약이 개발되고 낙태 허용, 이혼법 개정, 21살 이상 성인 간에 합의하에 이루어진 동성 간의 성적 행위의 비범죄화 등 성적 이슈에 허용적인 법률들이 제정되었다. 이와 함께 일어난 성 혁명은 페미니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 해방은 성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존재를 인정하고 여성에게 성적 쾌락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다. 특히 신좌파들은 결혼을 부르조아 제도로 비판하면서 성적 쾌락을 위한 섹스와 자유연애로 당대의 성적 규범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점차 많은 파트너와 보다 많은 성적인 기회를 갖는 것이 여성들의 성 해방으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성 해방과 학생 운동에 내재한 성차별주의와 좌파 조직 내에서 여성과 여성 관련 이슈가 주변화되는 현상에 분노하였다. 이들은 곧 성 혁명의 개념을 여성의 성적 정치적 사회적 행위성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재구축하고자 하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70년대 들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정치적 중요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론을 발전시켜갔다. 성 혁명을 여성 해방의 동력으로 사용하고자 했던 페미니스트들은 백인 남성 중심의 이성애적 활동에 대해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sexuality)에 대한 본질주의적 사고에 도전하였다. 본질주의적 사고는 섹슈얼리티를 자연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보고 성차에 대한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며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섹슈얼리티의 영역이 있다고 본다. 페미니스트들은 본질주의적 사고가 섹슈얼리티를 부정적인 힘과 사회 통제의 대상으로 볼 뿐만 아니라 남녀 간 섹슈얼리티의 차이를 생득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하여 성불평등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하였다. 이들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차 개념인 젠더(gender)를 고안하였다. 시몬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가 『제2의 성』(1949)에서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고 남녀 간의 차이를 사회문화적 차이로 환원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보봐르의 사회구성주의는 섹스/젠더 이분법을 탄생시켰다.

신좌파 운동에서 성장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좌파 진영의 몰성성(gender blindness)을 자각하고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의 몰성성과 생산 개념의 남성 중심성을 비판하였다. 동시에 이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여성주의 이론에 생산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남녀 간의 차이를 차별화하는 주요 기제로 섹슈얼리티의 정치학에 주목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케이트 밀레트(Kate Millete)는 『성의 정치학』(1970)에서 모든 문화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가부장제를 여성 문제의 근원으로 이해했으며 이를 “내적 식민화”로 분석하여 남녀 간의 관계를 정치적 영역의 한 형태로 개념화하였다. 또, 젠더와 가부장제를 연결하여 가부장제는 남성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성성의 신화를 창조하고 강조한다고 비판하였다. 가부장제는 섹슈얼리티를 자연적이고 불변하는 것으로, 남녀 간의 관계를 사적이고 비정치적인 것으로, 여성을 자연적으로 남성에 종속되는 존재로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이 슬로건 하에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차별적인 법과 제도의 형식적인 개혁이나 변화를 넘어서서 실질적인 양성평등과 여성 해방을 도모했다. 이들은 기존의 공사영역 구분을 비판하고 가정 내 폭력, 부부 강간, 성폭력, 가정 내 가사 분담 같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도 평등의 논의가 확대되고 국가와 사회의 적극적인 간섭이 필요한 공적인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은 『성의 변증법』(1970)에서 이성애는 남녀 간의 불평등한 관계 속에 근원을 둔 성적 사회적 정체성으로 역사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비가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성차별이 계급 차별이나 인종 차별보다 더 심각하다고 주장하여 ‘성 계급’이라는 용어를 제안하며 핵가족 제도 안에서 유아기 양육이 남녀 간의 권력 차이를 초래한다고 비판하였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레즈비언 분리주의, 문화주의 페미니즘, 반포르노그래피 진영으로 발전하며 1970년대 말까지 점차 성 해방과 여성 해방을 동일시했던 패러다임에서 남성 중심 섹슈얼리티의 위험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레즈비언 분리주의자들은 이성애 관계를 성적 관계의 가부장적 모델로 보고 이 속에서는 여성이 결코 성적으로 해방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억압받는 여성들 간의 연대와 실천으로서의 레즈비어니즘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남성과 가부장제가 발견하지 못한 여성 독자의 섹슈얼리티가 있음을 선언하였다. 이들은 이성애 남성들과의 분리를 선언하고 레즈비어니즘은 남성 동성애와 다르다며 게이 인권 운동과도 선을 그었다. 샤롯 번치(Charlotte Bunch)는 『반항하는 레즈비언』(1972)에서 레즈비어니즘을 성적 선호 이상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하며 레즈비언 분리주의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여성들 사이에 관계를 맺고 여성들과 함께 새로운 의식을 만드는 것이 여성 해방의 중심이자 문화혁명의 기반이라고 주장했다. 레즈비언 분리주의 는 섹슈얼리티와 여성혐오증을 연결시키기 시작하면서 친밀감, 비성기적 접촉, 감정적 양육 등 여성적 가치를 반영하는 페미니스트 성행위 윤리 코드를 제시하였다.

오드레 로드(Audre Lorde), 아드리안 리치(Adrienne Rich), 메리 데일리(Mary Daly) 등이 주도한 문화주의 페미니즘은 남성과 다른 여성의 ‘차이’에 중점을 두고 레즈비어니즘을 순수하고 진정한 관계로 찬양하였다. 또한, 여성 몸의 특수성을 반영하며 남성 성기 중심의 모델로부터 독립적인 여성 섹슈얼리티를 추구하였다. 이들은 그동안 평가절하된 여성성을 재평가하면서 문제적인 남성 우월주의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ed; PC) 여성들만의 대안 문화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문화주의 페미니즘은 성적 욕망과 성적 해방의 주제로부터 점차 모성중심주의로 강조점을 옮아가면서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 등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연대를 이끌어 내었다. 생물학과 여성 혐오와 여성의 속성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상정함으로써 몰역사적이며 본질주의적 결정론적 관점을 취했다고 비판받으며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구분되기도 한다. 문화주의 페미니즘의 남녀 간 ‘차이’ 이론은 반포르노 운동에 적극 사용되었다. 반포르노 운동 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에 반대하는 여성들’이라는 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남성지배적인 사회에서 사는 위험으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법률 제정을 목표로 삼았다. 남성에 의해 부여된 성적 위험과 폭력에 대한 개념은 반성폭력 여성 운동을 견인하며 1976년에 ‘성폭력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LA에서 결성되는 토대가 되었다. 80년대에 들어와서 사도마조히즘을 지지하는 레즈비언 성 급진주의자들도 등장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제3세대 페미니즘(제3의 물결)이 등장했다. 제3세대 페미니즘은 다양성과 차이를 강조하고 집단으로서의 여성은 동질 집단이 아니고 인종, 계층, 민족, 종교 등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에 한 범주로 묶어 분석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백인, 서구, 이성애, 중산층 중심주의를 탈피하여 여성의 다중적 상황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인종, 계급, 민족, 섹슈얼리티가 젠더와 교차하는 방식에 주목하였다. 성,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등은 모두 상호적으로 억압의 체계를 구성하며, 따라서 여성이 경험하는 다양한 억압의 형태를 연구하는 것은 다른 집단이 경험하는 억압까지 포괄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 뿐만 아니라 인종, 종족, 민족, 섹슈얼리티, 계급 모두 페미니즘 이론화를 필요로 하며 억압에 대한 모든 투쟁은 페미니즘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여성의 억압 이외에 다른 집단이 겪고 있는 억압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이론이 아닌 다른 소외받는 집단들을 위한 사회 정의 이론의 성격을 가져야 하며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근본적인 사회 변화의 기조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을 통해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성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여 성만이 아닌 다른 소수성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최근 20-30년간의 페미니즘은 이외에도 페미니즘 관점에서 자유, 평등, 시민권, 사회정의, 권력 등의 다양한 이슈들을 재해석하며 페미니즘 관점에서 기존의 이론이나 개념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단지 남성 중심에서 여성 중심으로 관심의 초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치중립적이고 일반 모두에게 적용된 것처럼 보였던 기존 이론이 실제로는 여성의 관점을 배제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여성의 관점을 바탕으로 남성과 여성을 포함한 인간에 관한 좀 더 나은 이론을 건설하고자 한다. 또, 80년대 이후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다시 등장하였다. 이들은 양성 평등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고 공적 영역을 확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여성 개인의 자유, 자율성, 주체성, 주관성 등의 이슈에 대해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개인의 자아결정(self-determination)과 자아방향성(self-direction)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이들은 여성의 임신종결권과 성적 선택권과 같은 특정 이슈에 한정되어 있던 기존의 자유 논의를 여성의 자유, 자율성, 주체성의 문제로 확장하였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재발견하려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마사 너스바움(Martha Nussbaum)을 들 수 있다. 그의 인간 역량 이론은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한 범위로 개인의 역량이 발전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는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선택의 자유와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의 회복을 페미니즘의 근본 과제로 주장한다.

 

  1. 한국의 페미니즘

한국의 페미니즘은 서구 페미니즘 이론을 기본적으로 수용하며 발전하여 왔다. 서구의 제1세대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100년에 걸쳐 투쟁하여 쟁취한 참정권 등의 권리를 한국의 여성들은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투쟁 없이 비교적 쉽게 획득하였다. 그 결과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공고한 기반 없이 급진적인 서구의 제2세대 페미니즘을 1960년대 이후 주로 수용하였다. 1960년대와 70년대 서구의 급진적인 페미니즘을 공부한 한국의 여성학자들이 한국 페미니즘 학계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또, 한국 페미니즘은 초기에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과 연계하고 방향성을 같이 하면서 급진성을 보였다. 1990년대 이후 급진주의적 성향에 대한 자성과 더불어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으로부터 독립적인 페미니즘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나 자유주의 사조의 핵심인 여성 개인의 자유와 자율에 대한 논의는 미미하다. 서구는 18, 19세기 자유주의 정치사상에서 비롯한 제1세대 페미니즘이 제2세대 페미니즘의 평등으로 대체되었더라도 개인의 자유와 자율에 관한 논의가 잠재해 있다가 다시 등장하였으나 한국의 페미니즘은 최근의 임신 종결권에 대한 논의를 제외하고는 평등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호주제 폐지, 성매매 특별법, 생리 공결제, 여성 공무원 채용 목표제, 여성 할당제, 군가산점제, 국공립대 여성교수 채용 목표제, 성희롱 성폭력 문제 등이 모두 평등 논리 아래에서 논의된 이슈들이다.

1994년에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가정폭력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법」이 1997년에 제정되었다. 1999년에는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가 2005년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금지업무로 통합되면서 폐지되었다. 이 법은 특히 성희롱 문제를 남녀 차별로 규정하여 성희롱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시켰다. 2004년에는 성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 피해자 및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사람의 보호와 자립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성매매특별법은 국내에서 성매매 하던 여성들을 해외에서 성매매하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며 2016년에 위헌 법률 심판이 제청되었으나 6:3으로 합헌 결과가 나왔다. 2005년에는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며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2015년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근거로 간통죄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인해 효력이 상실되었고, 2016년에 형법 개정에 의해 형법에서 정식으로 삭제되었다. 한국의 페미니즘도 1990년대 이후 여성들 간의 차이에 관심을 두는 논의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성매매 금지를 주장하고 성매매방지특별법을 통과시킨 여성계의 주류 담론에서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여성 외의 성소수자 등 다른 억압 집단에 관심을 두는 교차 페미니즘의 목소리들도 등장하였다. 교차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성소수자, 트랜스 여성과의 연대를 거절하거나 오히려 타도하는 급진적인 교차 페미니스트 내지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