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대담|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장 박준서 박사 | 대담 _ 박부민 편집국장

0
535

초청대담

 

구약성경 최초의 한글 번역자 ‘피터스 목사’ 기념의 의의

 

< 박준서 박사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 대담: 박부민 편집국장 >

 

* 지난 9월 17일(월) 본사 사무실에서 본보 768호에 ‘시편촬요 120년, 피터스 목사를 기념하자‘는 제목으로 특별 기고를 했던 박준서 박사(연세대 구약학 명예교수)를 만났다. 한국교회가 성경 위에 바로 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의 의미와 그간의 진행 상황에 관련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게재한다. – 편집자 주

 

피터스 목사
피터스 목사의 묘비
피터스 목사 젊은 시절
피터스 목사가 작사한 찬송가

 

문 _ 반갑습니다. 종교개혁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교회도 성경 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이런 때에 최초로 구약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신 피터스 목사님에 대한 관심을 불 지피신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박사님의 신앙의 내력이 궁금합니다.

답 _ 네, 기독교개혁신보의 관심과 배려와 초대에 감사합니다. 저는 어머니를 통해서 신앙을 전수받았습니다. 어머니는 고등 교육을 받은 분은 아니셨지만, 총명하시고 기억력이 뛰어나신 분이셨습니다. 일곱 자녀를 키우셨는데, 성경을 열심히 읽으셨고, 틈틈이 성경을 필사하셨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한 날과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완독한 날짜를 꼼꼼히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대개 5-6개월 정도 걸리셨습니다. 신구약성경이 모두 1180장 정도로 되어 있으니까 하루에 6장 정도는 읽으셨습니다. 노년이 되셔서 시간 여유가 생기셨을 때부터는 성경을 필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셨고 엄청난 분량의 필사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시는 어머니의 모습과 단정한 모습으로 성경을 필사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머리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제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진로를 바꾸어 구약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구약 교수가 된 것은 성경 말씀을 사랑하는 모범을 보여주신 어머니의 기도의 결과라고 믿습니다.

 

문 _ 구약학 교수로서 지금까지 연구와 가르치시는 일을 통해서 주제로 삼고 매진하셨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답 _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성경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왜 메시아 구세주이신가 하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이지(理智)와 지성으로 알아 낸 것이 아니고, 소위 득도를 해서 찾아 낸 것도 아닙니다. 사실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지만, 인간의 두뇌는 한계가 있습니다. 공부하고 연구하면 할수록 ‘모르는 세계’가 더 넓어질 뿐입니다.

노벨상을 받은 최고의 과학자들도 원자 하나, 세포 하나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합니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세계는 아직도 미지의 신비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머리와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조금 도움은 되겠지만요.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 인간에게 알려주신 것은 ‘계시’라고 하지요. ‘계시’의 기록이 곧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세상에 있는 모든 책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특별한 책입니다. 도서관을 가득 채우는 세상의 책들은 인간의 생각과 지식과 사상을 기록해놓은 것입니다. 그것도 가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가치는 없고, 불변하는 영원한 진리를 전하는 것도 아닙니다.

구약과 신약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정확히 알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이고, 죄로부터 벗어나 구원받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신학의 중심이고 구약학 교수로서 평생을 두고 가르치고 강조해 온 것입니다.

 

문 _ 피터스 목사님을 아시고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답 _ 저는 구약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님이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자였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사용하고 있는 공인 개역 구약성경 완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피터스 목사님이 1941년 70세가 되어 은퇴해서 미국으로 가신 이후 1958년 소천하실 때까지 그분의 말년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나 신학계에서 그분이 말년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그분의 묘소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만 피터스 목사님이 말년을 LA근교 패서디나에서 지내셨다는 것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에 패서디나에 소재한 풀러 신학대학에서 연구 교수로 지냈습니다. 피터스 목사님이 말년을 지내셨던 곳이니까 틀림없이 묘소도 그곳 근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생을 구약을 공부하는 구약학도로서 그분의 묘소를 찾아가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여러 목사님들께 묘소의 위치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묘소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피터스 목사가 누구입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열심히 컴퓨터 검색을 한 결과 패서디나에서 가까운 ‘마운틴 뷰 묘지’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즉시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운틴 뷰 묘지’는 8만 평이 넘는 큰 규모의 묘역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의 묘석과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는 묘역 한쪽 편에, 묘석조차 없는 초라한 묘역이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잔디와 잡초로 뒤덮여 있어 묘역같이 보이지도 않는 곳입니다. 묘지 관리인들은 그 외딴 구역에 피터스 목사님의 묘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막상 그곳에 가보니, 안장된 분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작은 표지판 위로 잡초와 잔디가 뒤덮여있어 목사님의 묘지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손으로 일일이 잡초를 헤쳐 가며 찾던 중에 마침내 PIETERS 이름이 새겨진 표지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피터스 목사님의 묘소를 찾았다는 감격보다 ‘아!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말로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해주신 한국교회의 은인의 묘가 이렇게 초라하게 방치되어 있다니요!

피터스 목사님의 묘소를 찾은 후, 저는 LA지역 목회자들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피터스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강의를 마치자 한 분이 손을 들더니 말씀했습니다. “왜 교수님은 피터스 목사님과 같이 중요한 분을 한국교회에 널리 알리고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제게 그 말은 상당히 충격적으로 들려 왔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피터스 목사님을 한국교회에 알리는 일을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으로 알고 일하고 있습니다.

 

문 _ 지난 4월에 기고한 글에서 피터스 목사님의 성경번역을 포함한 한국교회에 대한 사랑이 지대하셨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 분에 대해 좀 더 보강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 _ 피터스 목사님은 한국교회를 특별히 사랑하신 분입니다. 1895년, 24세의 청년 피터스가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한국에 와보니 그때까지 한국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먼저 와 있던 선교사들은 구약성경 번역은 워낙 방대한 작업이고 높은 수준의 히브리어 지식이 필요한 일이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피터스 청년은 전국 여러 곳을 다니며 신약성경과 쪽복음을 팔았습니다. 그러면서 틈틈이 한국말을 배웠습니다. 워낙 어학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그는 2년이 지났을 때 한국어에 능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구약의 책들 중에서 우선 그가 히브리어로 항상 애송하던 시편을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순 두 편의 시편번역이 끝나자 이를 출판했습니다. 그것이 1898년에 출판된 『시편촬요』입니다. 단군 이래 최초로 구약성경이 한글로 번역된 것입니다. 피터스는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배워 3년 만에 구약의 책 중에서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시편을 유려하고 한국말 운율에 맞는 우리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피터스는 어학의 천재였습니다.

그 후 피터스는 성경을 더 잘 번역하기 위해서 신학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1900년 1월부터 맥코믹 신학교에서 3년 동안 신학 수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언서 오바댜에 관한 연구로 졸업 논문을 썼습니다. 유대인으로서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피터스가 쓴 논문을 읽고 교수들은 그를 구약학자로 키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2년 동안 독일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을 주기로 했습니다. 피터스가 장학금을 받고 독일로 유학을 갔었더라면 그는 모교로 돌아가서 구약학 교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터스는 그 좋은 장학금을 거절했습니다. 한국으로 빨리 돌아가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만큼 그는 한국교회를 사랑했고, 구약 번역을 그의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 신학교에서 만난 여학생 엘리자베스 캠벨과 결혼해서 함께 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폐결핵으로 33세의 젊은 나이로 소천했습니다. 그의 묘소는 서울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있습니다.

 

문 _ 피터스 목사님을 기리고 그 은혜를 아는 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도리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기념사업회의 목적도 거기에 있겠지요?

답 _ 그렇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어학에 특출한 재능을 타고난 피터스를 멀고 먼 러시아(현재는 우크라이나)에서 일본까지 오게 하셨고, 거기서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 받고 크리스천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피터스는 원래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정통파 유대인이 세례 받고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오늘날도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피터스 목사님은 한국에 와서 성경 번역과 선교 사역에 생애를 바치셨습니다. 피터스 목사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피터스 목사님의 헌신과 공헌을 기념하는 일은 한국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너무도 오랫동안 피터스 목사님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문 _ 그 사업과 관련해 미국 현지에서 의미 깊은 일을 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답 _ 말씀드린 대로 LA근교에 있는 피터스 목사님의 묘소는 아무도 찾는 이 없이 잡초와 잔디로 뒤덮여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그곳에 목사님의 공적을 알리고 감사를 표하는 기념 동판을 그 후손들을 모시고 오는 12월 1일(토)에 묘소에 세우려고 합니다. 감사한 것은 남포교회에서 박영선 원로 목사님을 비롯해 온 교회 성도님들이 헌금으로 도와주셔서 기념 동판을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판은 미국에서 제작했습니다. 뜻깊은 기념사업을 도와주신 남포교회 최태준 담임 목사님과 모든 성도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문 _ 현재 구상하고 계신 다른 기념사업이 있습니까?

답 _ 내년에는 서울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피터스 목사님 기념비를 세우려고 합니다. 양화진에는 결혼 생활 4년이 되기 전 33살에 폐결핵으로 돌아가신 목사님의 첫 번째 부인 엘리자베스 캠벨의 묘지가 있습니다. 피터스 목사님은 의료선교사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하셨던 에바 필드와 재혼하셨습니다. 여의사 에바 필드는 아들 둘을 낳고, 암으로 소천하셨습니다. 이분의 묘소도 양화진에 있습니다. 양화진에 목사님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 계획으로는 피터스 목사님의 묘소를 미국으로부터 양화진으로 이장하는 것도 구상 중입니다.

앞으로 피터스 목사님 전기도 집필해서 출간할 계획이고, 미국과 영국 선교부와 성서공회 등에 산재한 피터스 목사님에 관한 자료를 찾아내 책으로 엮어 출판하려고 합니다. 또한 피터스 목사님을 널리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피터스 목사 기념 강좌’를 일 년에 두 번 서울과 지방에서 개최하려고 합니다. 혹시 그 외에 좋은 구상이 있으시면 여러분께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 _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에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지요?

답 _ 한국 교회는 피터스 목사님이 번역해 주신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 배우며 성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세속의 먼지와 불순물이 쌓이게 마련입니다. 한국 교회는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서 항상 자기를 성찰하고 개혁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한국교회 성도들도 모두가 다시 성경 말씀의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덧붙여, 독일 사람들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해 준 마틴 루터를 500년이 지난 오늘날도 잊지 않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할 줄 아는 선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한글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애써 주신 피터스 목사님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사역에 모두 동참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끝>

 

박준서 박사 parkjs@yonsei.ac.kr

서울대 법대, 연대 신과대 졸업, Yale 대학 신대원 M.Div., Princeton 신학대 Ph.D.(구약학), 연세대 신과대학장, 연합신대원장, 연세대 교학부총장, 경인여대 총장 역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교환교수, Oxford 대학 Oriel College 연구교수, Fuller Theological Seminary 연구교수, 한국 구약학회 회장 역임, 현 연세대 명예교수(구약학),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저서> 구약개론, 성서세계의 이해, 십계명 새로 보기, 이스라엘아! 여호와의 날을 준비하라(구약 소선지서 연구), 성지순례, 성서와 기독교(공저), 외 논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