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신앙| 봄부터 우는 소쩍새 _ 정요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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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신앙

봄부터 우는 소쩍새

<정요석 목사_세움교회>

 

하나님이 최종의 원인자로 모든 것을 붙들고 집행하시는데
어찌 눈앞의 천둥에 기가 꺾여야 하는가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시 ‘국화 옆에서’ 전문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올 봄에도 소쩍새는 울었다. 그런데 소쩍새가 우는 것과 국화꽃이 피는 것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 소쩍새는 자기가 좋아서 울 뿐이고, 먹구름 속에서 우는 천둥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렇게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들이 결국에는 관계가 있다. 국화 하나의 꽃핌에 소쩍새와 천둥의 전 우주적인 참여가 있듯,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여인의 안정과 성숙에도 전 우주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인생을 살며 겪는 숱한 일들이 사람의 성숙과 깨달음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관찰을 비그리스도인인 서정주 시인은 멋진 시로 표현해 내었다.

국화의 개화(開花) 과정을 통하여 어떠한 생명체라도 치열한 생명 창조의 역정을 밟고 태어난다는 것을 선명히 보여 주는 이 시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 因緣說)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한다고 할 때, 그것이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강한 힘을 부여하는 인(因)과 약한 힘을 보태는 연(緣)과의 상호 결합의 결과로 본다. 이 시에서도 국화 자체의 힘(因)과 소쩍새, 천둥, 무서리가 봄부터 가을까지 작용(緣)함으로써 국화가 꽃을 피우는 것이다. 여기서 국화는 모든 생명체의 대유이자, 나아가 생명이 그러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상태의 상징이며, 동시에 시적 자아의 ‘누님’과 같은 40대 중년 여인이 도달할 수 있는 원숙하고 평온한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의 시를 평하는 양승준 씨의 글이다. 무엇이 근본 원인이 되어 다른 제반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관하여 철학과 여러 종교는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이것에 대해 불교는 모든 존재는 결과임과 동시에 원인이라고 본다.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을 강조하지, 남을 떠나 홀로 존재하는 절대적 자존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불교는 도대체 어떤 존재와 시스템을 인하여 이런 상의상관성과 인과응보가 작동되는지 답하지 못한다. 불교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신을 인정하고 있다.

성경은 사물의 처음과 끝에 대하여, 제1 원인과 제2 원인에 대하여 아래처럼 말한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28-32)

하나님은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의 근원이시다. 사람과 환경과 행동 모두를 보존하시고 통제하신다. 그 세밀하고 큰 과정은 사람이 잘 모른다. 하나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일하실 정도로 겸손히 우회하며 신비하게 일하신다. 사람에게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새와 백합화를 기르시고, 사람을 자녀로서 사랑하고 성숙시키신다는 것이다.

공자는 마흔을 잘 분별할 수 있고 감정도 절제할 수 있다며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비신자인 서정주도 시간을 통한 연단과 성숙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연단과 성숙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간섭과 보살핌임을 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르시고 활짝 피우신다. 노란 꽃잎이 피도록 먼 뒤안길을 걷게 하시며 연단하신다. 하나님이 최종의 원인자이시고 모든 것을 붙들고 집행하시는데, 어찌 눈앞의 천둥에 우리가 기가 꺾여야 하겠는가? 우리는 불어오는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주어진 길을 걸어가면 된다.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보다 시(詩)도, 주변의 다양한 현상과 자연도 잘 읽어내는 자이고, 그만큼 미혹됨 없이 경쾌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