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오용하지 말자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M 교회 K 목사의 아들 K 목사가 “(교회의) 세습금지는 역사적 요구”라고 밝히고 “지난 예장 통합 총회에서 세습을 금지하기로 한 결의를 하나님의 응답으로 알고 따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아들 K 목사의 진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언론을 상대로 이러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본인이 세습을 하고, 하지 않고 하는 사항은 전적으로 사적인 의견이며, 개인의 양심에 따라 결정하는 사안이다. 이런 일에 ‘역사적 요구‘를 운운하거나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하는 거창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역사적인 요구‘나 혹은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말은 이런 사적인 사안에다 붙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역사적인 요구‘ 또는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개인이 이리저리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사안에다 붙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관심사에 일일이 응답하기보다는 이미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명백하게 밝혀 놓으셨다. 때문에 성경에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역사적 요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인지 잘 명시되어 있다. 그러니 성경을 따라 살면 아주 간단한 것을 가지고 거창하게 ‘역사적 요구‘라고 하거나 ‘하나님의 응답‘이라고까지 운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요구‘는 분명하다. 곧 사도들이 교회에 넘겨준 성경 66권을 변질시키거나 오염시키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로 전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 땅의 교회는 올바른 말씀 선포와 성례의 집행 및 정당한 권징의 시행을 수행해야 한다는 역사적인 사명 의식을 늘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 요구’인 것이다.
나아가 그와 같은 교회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 교회의 항존직인 목사와 장로와 집사의 직분이 명확하게 교회 안에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이 좁은 길을 가고 있다는 명백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나타나게 되며 이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