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독교적 사회관의 재정립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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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독교적 사회관의 재정립을 위하여

 

   혼돈의 시대에도 각성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의 삶의 의미에 대한 성경적 고찰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여러 통계적 자료상 부정적 기류에 직면한 근자의 한국 교회는 내외적으로 낙담하고 지친 기색도 보인다. 우리가 지금 성경적 사회관을 재정립하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절박한 역사적 맥락에서 다음 세대까지도 올바른 성경적 삶을 누리게 해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혼자가 아닌 남녀로 창조하시고 또 그들이 경건한 후손을 낳아 사회를 이뤄 거기에 하나님의 통치가 펼쳐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로 하셨다. 인간이 생육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분의 의와 거룩을 반영하고 사회 전체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신앙적 공동체를 원하신 것이다. 이에 복된 명령(창 1:28)을 주셔서 땅 위에 세우심을 받은 하나님의 형상인 자녀들을 통해 그 영광이 발현되는 사회를 이루어 가실 것임을 의도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사회를 떠나 도피할 수 없고 도리어 사회의 제반 문제에 성경적으로 접근하여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변혁주의이고 리차드 니버가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제시한 ‘문화의 개혁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으로 보강되었다. 놓치지 말 것은 변혁주의는 사회 속의 악, 인간의 죄성을 철저히 전제한다는 점이다. 문화 속에는 악이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신앙을 토대로 그 문화를 개혁하고자 현실에 임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혁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진 않다.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완성하셨으므로 이 땅의 사회 제반 영역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류라는 비판이 있다. 종말론적 관점에서 세상은 장망성이요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만 완성된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장망성이라도 가서 제자를 삼고 그리스도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과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일은 종말까지 우리가 행해야 할 삶이요 사명인 것 또한 분명하다.

   반드루넨 같은 학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아담이 받은 책임을 완성하셨고 구속 사역을 온전히 이루셨기에 우리가 문화를 변혁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했다. 아마도 반드루넨은 그리스도인이 사회 개혁의 주체라는 대목에서 장망성인 세상에서의 문화 활동에 절대성을 부여하여 그리스도 없는 인본주의로 흐를까 염려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종결성과 완전성을 강조하며 카이퍼나 스킬더 그리고 알버트 월터스 같은 소위 신칼빈주의자들의 변혁주의적 견해에 경계를 표한다. 신칼빈주의가 그리스도의 구원의 목표와 칭의론을 희석시키는 맥락에 합류한다는 합리적 의심이 어느 면에서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통 개혁주의의 복음을 흐리게 한다는 혐의까지는 수용하기 힘들다. 역사적 신칼빈주의가 이 땅에서의 문화적 변혁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믿는 측면이 있다는 주장은 수긍이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이 세상 모든 영역에 이른다는 것과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적용되어 발현되기를 소망하며 실천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이의를 달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문화적 활동은 하나님의 창조가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창조계를 계발하고 그 의미를 더욱 드러내어 하나님의 영광이 발현되도록 일함을 뜻한다. 세상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할 뿐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반영하는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반드루넨의 표현대로라면 아담이 실패했고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신 일이지만, 또한 그의 제자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으로 살며 종말까지 행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사회에서 따로 떨어져 가시적 예배와 교회 활동에만 전념하는 정도가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구현하기에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개인을 넘어 교회의 구성원으로, 또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며 섬겨야 할 세상에 사는 자로서 사회적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는 개인의 구원을 기초로 하지만 결코 개인적 감흥(ecstasy)만을 강조하진 않는다. 내가 속한 사회야 어찌되든 내 자신의 종교적 희열만 잘 유지하면 된다는 식의 탈사회적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나라를 발현하는 역동적 존재이다. 따라서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당연히 적극적이어야 한다.

   인간의 죄로 인해 이기적 인간관계, 부조리한 사회 구조 등 창조계의 전 영역이 왜곡되었다. 살인과 책임 전가, 폭력, 부정, 압제, 착취, 전쟁이 이어졌다. 공평과 정의가 묻히고 환경도 오염되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여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삶의 본질을 새롭게 창조하신 사역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전 삶을 통해 거룩한 빛을 비추며 사람들이 그 빛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대로 개인과 사회적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현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자세는 이타적 섬김과 봉사를 기반으로 한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통치가 죄로 왜곡된 사회 속에서도 잘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땅을 다스리라’(창 1:28)는 것은 창조계의 모든 영역을 망라한 통합적인 명령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를 따라 사회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도록 기도하며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기독교적 사회관을 체현하며 살고 성경을 기초로 우리 사회에 방향을 제시하는 책임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