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_ 최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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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최덕수 목사 _ 현산교회>

 

우리는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는가?

목회자들은 물론 일반 신자들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절대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기 개인의 경험이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의 삶을 오랫동안 지켜보아 온 결과 성화의 열매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친구들을 수 십 년 만에 만날 때에는 어린 시절의 재미있는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우지만, 친구들과 헤어지고 난 다음에는 나이가 들었다는 것만 다를 뿐 이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자기 신념을 더욱 분명하게 굳히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절대 변할 수 없다는 생각을 끝까지 견지하는 것은 성경보다 자기 주관적 경험을 더 절대화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현실을 근거로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 되고 성경을 기준으로 현실을 해석해야 한다. 백 년도 못되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내린 결론을 잣대로 삼아 성경을 재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성숙과 성화의 열매를 맺었던 많은 사람들을 성경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올라갔을 때 자신들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하여 엎드려 절한 사람은 자신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판 동생 요셉이었다. 요셉의 형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으나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던 요셉은 형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요셉의 형들은 자원하여 종이 되고자 하였으며 애굽에서 겪은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보응으로 이해하였다. 이것은 완고한 사람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다윗 역시 밧세바와 간통한 죄에 대한 성화적 차원에서의 징계를 받는 과정에서 점점 성화되어졌다. 시므이가 저주했을 때는 혈기로 반응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저주하도록 한 행위로 받아들였다.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도 변화되어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밖에도 우리는 성경에서 선하고 거룩하게 변화되어간 인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은 성경에 나오는 특별한 사람들로서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절대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은 분명히 변한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실제로 우리 주위에 변하는 사람이 있다. 다만 그 수가 너무 적어서 현실에서는 변한 사람을 찾을 수 없고 결국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의 돌처럼 굳어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부재 현상으로 인한 어두움의 그림자가 오늘날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탓을 한다면 변화되지 않는 우리 자신을 탓해야 하고 영적으로 너무 어두운 우리 시대를 탓해야지, 나도 변화되지 않았으며 내가 아는 이들도 변화되지 않았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자기 경험을 근거로 성경이 명백히 말씀하고 있는 진리를 구부려 뜨려서는 안 된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은 의롭다 함을 받은 신자는 실제로 의로워진다는 성화의 복음을 믿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어떤가? 신앙의 경륜이 쌓여가면서 너그러움과 관용과 겸손과 온유가 많아지고 있는가? 아니면 아집과 고집과 편견과 완고함이 많아지고 있는가? 우리는 새 영과 새 마음, 곧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하신 새 언약이 성취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변해야 한다.

이 세상에 절대 변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 천지는 없어지고 옷 같이 낡아질 것이지만 우리 주님은 한결 같으실 것이다(시편 102:26). 하지만 사람도 변하고 세상도 변한다. 사람은 절대 아무런 변화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문제는 변하느냐 변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아니고, 좋은 쪽으로 변하느냐 나쁜 쪽으로 변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쪽으로 변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