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완장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완장은 자격과 지위를 상징한다. 천 쪼가리 하나 팔에 두른 것뿐이지만 그 파급력은 크다. 축구팀의 주장이 완장을 차면 그 책임감으로 자타 공인 팀의 정신적 지주가 되기도 한다. 완장은 이렇듯 좋은 동기 유발의 매개체이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봉사와 섬김의 본이 되라고 채워 주는 표이다.
그런데 크고 작은 지위들을 완장으로 표현한다면 완장은 양면성을 갖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완장은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만들 수 있다. 완장 본래의 가치와 의미에서 벗어날 때 폐해를 낳는다. 특히 그것을 채워 주는 세력이 불건전한 목표로 당사자를 이용하면 완장은 더 비극을 부른다.
이런 예로는 한국전쟁 발발 후 인공치하에서의 완장이 먼저 떠오른다. 완장 하나에 사람이 돌변했다. 그것은 비록 일시적이지만 일종의 절대 권력의 표였다. 죽창을 들고 초법적 살인도 마다않은 동력의 근거였다. 거기에 부추기는 칭찬을 보태면 과잉 충성과 행동까지 불사하며 자기 존재 가치를 더 인정받으려 했다. 이런 부정적 완장은 왕조시대, 일제강점기, 미군정기, 독재정권 때를 망라하고 지금도 존재한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에는 이런 완장의 부정적 동력 때문에 몰락한 인물상이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완장의 맛이란 내 결재가 아니면 되는 일이 없을 때 극에 달한다. 내가 가는 길에 모두 고개를 수그릴 때 희열이 온다. 완장을 찬 하만이 천하가 다 절하는데 그렇지 않은 모르드개에게 크게 분개한 것도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완장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그 결과도 크게 갈린다. 완장과 좋은 인격이 합치되면 그것은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 마법 같은 탐욕을 제어한다면 섬김과 신뢰성의 상징이 된다. 완장을 차더라도 변함없이 평상심을 유지하며 되레 더 섬기고 봉사하며 잘 감당해 내면 자신과 모두에게 보람되고 유익하다.
두려움으로 완장을 벗어 버리는 것만이 미덕은 아니다. 누군가 그 완장을 차야만 하고 그가 자신이라면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다만 성심을 다해 그 본래의 취지에 부합한 활동으로 완장의 의미를 빛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