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오시와 베시_허 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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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오시와 베시

<허 순 목사_예수우리교회 / 경기북노회장>

 

통일 후 남북의 감정의 경계선을 허물기 위해 교회는 준비해야

  독일 부퍼탈한인선교교회에서 목회할 때 유학생 한 명이 베를린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서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었다. 열쇠고리는 투명 아크릴이 달려 있었는데 그 안에 작은 시멘트 조각이 들어 있었다. 유학생은 시멘트 조각이 무너진 베를린 장벽 중 한 조각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독일이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에 통일된 후에 독일 통일을 기념하기 위한 관광 상품으로 시멘트 조각을 열쇠고리로 만들어 판매한 것이다.

  유학생의 설명을 듣고 열쇠고리를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였다. 아직도 분단된 조국의 현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언제쯤 남북이 통일되어서 38선을 가로막은 철책선이 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며 지나갔다. 그리고 통일이 되면 남북을 가로막았던 철책선으로 열쇠고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보면 한때는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고, 개성공단이 생기면서 통일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가까이 남북은 다시 냉전시대처럼 변해 버려서 통일에 대한 꿈이 멀어지는 듯했다. 이렇게 다시는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남북이 올해는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이어서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천명하게 되었다. 남북 관계는 혹한기를 거쳐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는 것 같다.

  앞으로 부산에서 출발해서 동해선을 타고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독일 베를린까지 갈 수 있는 기차가 생긴다면 나는 그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 꼭 가보고 싶다. 그 이유는 나의 오랜 꿈이기 때문이다. 남북이 새로운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하면서 이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에 대하여 마냥 좋은 꿈만 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통일은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될 수많은 난제가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난제 중의 난제라고 하면 어떤 것이 있을까?

  독일이 통일 후에 가장 힘들어 하는 난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은 28년 동안 분단된 서독과 동독이 통일된 후에 사람들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갖게 된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부터 서독 사람은 동독 사람을 오시(Ossi·게으르고 불평 많은 동독 놈)라고 불렀고, 동독 사람은 서독 사람을 베시(Wessi·거드름 피우고 잘난 체하는 서독 놈)라고 불렀다. 각각 독일 말로 동쪽을 뜻하는 오스트(Ost)와 서쪽을 뜻하는 베스트(West)에서 비롯된 말이다. 독일이 통일된 후에 서로를 경멸하는 말인 오시와 베시는 독일 국민 사이에서 더욱 심각하게 사용되었다. 오시라는 말에는 “왜 우리가 동독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느냐”는 서독인의 불만이 깔리게 되었고, 베시라는 말에는 “우리를 2등 인간 취급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동독인의 좌절이 담기게 되었다. 오시와 베시라는 말은 통일된 후에 서독인과 동독인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경계선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긴 감정의 벽은 서로를 경멸하고 증오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된다.

  독일에 있을 때 지인의 초대로 동독지역이었던 아이제나흐를 방문한 적이 있다.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번역한 바르트부르크성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고향이어서 기대를 안고 찾아갔다. 아이제나흐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네온사인으로 휘황찬란한 도회지에 있다가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고 있는 고향 땅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한 마디로 소외된 지역에 대한 느낌이었다. 독일 국민이 아닌 이방인인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은 그들 안에 있는 오시와 베시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통일이 현실이 되고 난 후에 대한민국도 수많은 난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중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독일 통일에서 볼 수 있듯이 서독인과 동독인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경계선이다. 우리나라도 통일이 된 후에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 사이에 감정의 경계선이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70년 가까이 분단된 땅에서 서로 다른 사상과 정서를 가지고 살았다. 어느 한순간에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하면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경계선을 허물어 낼 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국가가 일관된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고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 방법 중에 하나로 한국 교회가 이 문제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준비해야 한다. 특히 교회 안에 통일 전문가들을 양성해서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감정의 경계선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해야 한다. 비록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교회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책무를 찾는 과정이라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고 그 길을 모색해야 한다.